유통업의 간단하지만 심오한 원리, 함께 살펴보시죠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제가 생각하는 유통업의 본질에 대해 먼저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이 부분을 먼저 꼭! 읽어 보시고 다음 장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0장으로 넣었습니다. 이 장을 꼭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주세요!
여러분, 유통 회사의 본질, 또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싸게 사서 많이 파는 것? 그렇다면 비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회사는요? 조금 사서 조금만 파는 소매업은? 싸다는 것의 개념과 많이 판다는 개념은 무엇일까요? 싸게 사서 많이 파는 것은 유통 비즈니스의 주요한 한 전략 중 하나이지, 유통업의 본질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린 맨날 무지막지한 사업목표 실적을 저렇게 단순한 숫자로 받기 때문에, 실무 하시는 분은 언젠가부터 유통 회사의 가치를 저렇게 생각하시게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너가 생각하는 유통회사의 본질은 뭔데?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유통이라는 것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통회사는 기본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의 사이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회사입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판매자가 직접 구매자에게 바로 물건을 팔면 되는데, 굳이 유통업자가 중간에 낄 필요가 있을까요? 괜히 멀쩡한 상품에 마진을 붙여 소비자가 결국 물건을 더 비싸게 사게 되는데요? 원시적인 형태의 거래라면 당연히 유통업자가 필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 과자 공급 업체가 4개이고, 과자를 사먹는 사람이 4명만 존재할 때, 가능한 거래의 경우의 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4(과자 공급자) X 4(과자 수요자) = 16
이처럼 유통회사가 없는 상태에서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게 된다면, 거래의 관계는 N X N의 관계로 곱셈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제임스는 농심 과자를 먹으려고 농심을 찾아가야하고, 오리온의 과자를 먹으려면 오리온을 찾아가야하고, 해태 과자를 먹으려면 해태를 찾아가야하고, 빙그레의 과자를 먹으려면 빙그레를 직접 찾아가야해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거래 행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은 어떨까요?
대한민국에 과자 업체는 100개가 100개라고 가정해봅시다. (사실 훨씬 더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 인구 중 과자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없겠죠? 5천만명이 과자를 구매하게 된다면 가능한 거래의 경우의 수는
100 X 5천만 = 50억번의 거래
여기서 과자 업체가 하나 더 생긴다면? 5천만개의 거래 경우의 수가 더 생길거고, 인구가 1명 늘때마다 제조사만큼의 거래 경우의 수가 생겨나게 될거에요. 해외 과자 업체까지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오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유통회사가 생긴다면? 곱셈의 복잡도를 덧셈으로 바꿔, 거래의 경우의 수를 획기적으로 낮춰주게 됩니다.
유통사가 있다면, 거래의 경우의 수는 N+N의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제임스는 유통회사에서 농심, 오리온, 해태, 빙그레의 과자를 한 번에 살펴볼 수 있고, 농심도 유통사에 물건을 가져다 주기만 하면 제임스, 다니엘, 김춘복, 나까무라에게 각각 홍보, 마케팅, 판촉을 할 필요도 없어져요. 유통사가 짜잔! 등장하면서 거래의 관계가 매우 단순해져요.
위의 표와 같이 유통사가 존재하게 된다면, 거래의 관계가 매우 단순해져서 제조사는 제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소비자는 한 장소에서 많은 상품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굉장히 효율적인 거래 구조가 형성되게 됩니다. 과자만 해도 이런데, 칫솔, 화장지 생필품부터 가전제품, 옷까지 다 합친다면? 경우의 수는 무한대로 증가하게 됩니다. 유통사가 없다면? 우리는 영겁의 구매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할 거에요. 유통업은 그래서, 한없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 필수적인 비즈니스에요.
그리고 유통업은 단순히 거래 관계를 단순화 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창조하며 진화해왔어요. 전통 시장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형마트가 등장했고, 대형마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커머스가 출현했으며, 이 이커머스는 다시 배송/버티컬 등 고도화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좋은 상품의 품질을, 싼 가격으로, 빠르게 받아보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죠. 하지만 인류 역사상 처음의 거래는 그렇지 않았을 거에요. 화폐가 없어 물물 교환을 하고, 때론 목숨 걸고 사막과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때론 전쟁도 불사하며 유통은 계속 진화해왔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유통이 이제까지 발전된 “결과물”을 보고 있어요. 유통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까요? 앞으로의 모습을 예측하기 위해, 유통업이 어떤 요소들을 활용해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면서 미래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같이 얻어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