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by 생각많은인프제

희망을 만나며 베이비박스에 대한 사실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누군가 버리고 가면 우리병원으로도 신생아 검진을 하러 기관에서 방문하고 심한 황달이 있거나, 신체적 질병은 없으나 몸무게가 너무 작아 기관에서 수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입원이 진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 큰 시술이 필요한 경우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하여 필요한 처치 후 안정된 다음 전원 된다는 사실도.


베이비박스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포털에 검색하니 어느 교회 사이트가 나왔고 영아 돌봄을 위한 봉사자를 상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혼에 아기도 조카도 없던 나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용기를 가지고 봉사 신청을 해보았고 기관에 가보게 되었다.


베이비박스는 서울 모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이 교회를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봉사활동을 하기도 전에 멀미로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길을 지나 굽이굽이 길을 타고 오래도록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목적지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새로운 문제가 하나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회 앞에 버스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회는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버스는 언덕 아래 아파트 단지까지만 다니고 있었고 교회에 가기 위해선 언덕 밑에 있는 어느 아파트 단지 버스정류장에 내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올라가야 했다.


언덕을 오르며 어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 언덕을 똑같이 올랐을 누군가를 상상해 보았다. 아기를 베이비박스 안에 놓고 가려면 보는 눈이 많은 대낮은 힘들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아기가 잠을 자야 가능했을 것이다. 아기가 울어서 누군가를 깨우면 안 될 테니까. 짙은 어둠 속에서 이 언덕을 올랐던 그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을까. 슬픔은 있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느꼈을까. 그 품 안에 안겨 잠든 아기는 아주 가벼웠을까, 아니면 그이에겐 그저 족쇄 같았을까. 이윽고 언덕 끝에 도달해 모질게 마음먹고 결단을 내렸을 그 마음이 참으로 서늘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을 그이의 삶이 너무나도 비통하게 느껴졌다.


담당 사회복지사님으로부터 간단한 교육과 영상교육을 마친 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태어난 지 열흘도 되지 않는 아기부터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 아기도 있었다. 아기들은 너무나도 작고 약해 내가 안아도 되는지 의문이 잔뜩 들게 했다. 이 방에 들어와 보니 봉사자가 왜 필요한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신생아 아기들은 짧게는 한 시간 반에서 보통은 두 시간 간격으로 수유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이 아기들의 수유를 전부 책임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수유도 하고 아기들 트림도 시켜야 하고 또 토닥여 재우기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 단순하고도 무한히 반복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아기들은 정말 한 줌 같았다. 아직 세상에 뿌리내리기엔 너무나도 작아서 후 불면 멀리멀리 날아갈 듯 가벼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기들은 배꼽시계에 맹렬히 반응할 뿐이었다. 쫩쫩거리는 우렁찬 소리로 젖병 속의 분유가 줄어가는걸 보면서 이 아기들이 제발 부디 건강히 자라길 바랐다. 분유를 다 먹고 나면 트림을 시키고 아기를 토닥여 재우는데 꼭 잠들지 않고 오래도록 눈을 똘망똘망 예쁘게 뜨고 있는 아기들이 있었다. 그러면 아기를 안고 창밖 구경을 시켜주었다. 아기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로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아기는 누구를 닮아 이렇게 작고 오밀조밀하게 생겼는지, 아기의 반짝거리는 눈처럼 창밖의 빗방울들이 반짝반짝 떨어지는 것 같다고 주접을 떨기도 했다. 한 줌도 안 되는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길래 배부르게 밥도 다 먹었는데 잠을 안 자는지 묻기도 했다. 그렇게 소곤소곤 여러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아기의 눈은 반쯤 감겨 내렸다가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우리도 잠이 들기 어려운 밤엔 ASMR을 듣는 것처럼 아기에게도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ASMR이었으리라.


봉사 시간이 끝나면 뒷목이 뻐근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기는 언제나 나의 시선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으므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탓이다. 하나의 생명을 품어내고 보호하며 키워내는 것은 누군가 몸을 가득 굽혀 따뜻하고 안락한 품을 제공하였을 때 가능한 숭고한 일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귀가하기 위해 밖을 나왔을 때 작은 탄성이 흘렀다. 여기는 언덕의 정점. 해가 지려는지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볕이 아주 강렬했고 언덕을 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악착같이 서울 어디선가에 뿌리내린 삶의 흔적들이었다.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뿌리내리지 못한 삶들이었다.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파 일하면서 툴툴대기도 했었는데 내가 몸을 굽혀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뿌리가 없다시피 한 그들의 삶은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흩어져 버릴 게 뻔했다.


아주 작은 다짐을 해보았다. 출근하게 되면 그만 툴툴거려야지. 보호대를 착용하고 테이핑을 할지언정 한 번 더 몸을 굽혀 그들을 들여다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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