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나다

by 생각많은인프제

병원으로 인사 이동하여 전입해 들어온 지 1달이 조금 지나갈 때였다. 신환이 입원한다고 하는데 6개월 된 아기라 했다. 아기에겐 보호자가 없었고 무연고 행려환자였으며 진단명은 ‘무뇌수두증’이었다. 아기의 이름자 앞에는 ‘미상’이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기의 이름은 희망이었다. 미상 과 희망 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말이 한명의 아기에게 공존하다니. 그저 사랑으로 키워도 모자랄 판에 미상 이라니...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 명의 아기를 키울 여력이 모두에게 있는 게 아님을.

아기는 무뇌수두증뿐만 아니라 여러 진단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먹어야 하는 약이 어마어마했다. 우리병원은 급성기 치료를 하는 병원이 아니었으므로 큰 병원에서 필요한 여러 시술을 받고 안정된 후 전원 되었는데 그 모든 순간을 견뎠을 아기의 몸뚱아리가 너무나도 작아 더더욱 마음이 복잡하고 아렸다.


아기는 너무나도 작고 약해서 한동안 격리병실에서 지켜보았다. 병동 선생님들은 아기가 홀로 있는 게 안타깝다며 가운을 입고 일부러도 들어가 아기를 오래도록 안아주기도 했는데, 나는 이 작은 아기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체온유지가 중요해 여러 겹으로 담요를 싸둔 덕에 격리실 창밖에서 보는 아기는 아주 작은 코와 세모 모양으로 벌어지는 입술 일부만 보였다. 아기가 너무나도 낯설었던 나는 이 낯섦이 어디서 오는지 깊이 생각하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부러 들어가지 않고 창밖에서 아기를 오래도록 들여 다만 보았다. 격리병실에 들어가는 그 길이 나에겐 참으로 어렵고 쉽질 못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지낸 뒤에야 나는 내 마음 한구석에 부채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교롭게도 아기와 나는 생일이 같았다. 어느 생일은 기억되고 축하받지만, 어느 생일은 그저 의미 없이 흘러 지나가는 하나의 날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너뜨렸다. 누군가는 아기에게 사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 없이 그저 홀로 병을 견뎌야 하는 가혹한 운명이 당연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놓고 간 친모를 대신하여 아기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제야 나는 아기를 보기 위해 격리병실에 들어갈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격리병실에 들어가 아기를 안아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아기는 통실통실했다. 발그레하고 말캉한 뺨이 양옆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아주 작은 손과 발을 만지작거리며 거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아기의 귀에 아기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로 오랫동안 속삭여 주었다. 아주 작은 몸으로 너무나 비정한 시간을 견디게 해서 정말 정말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약속했다. 돌아오는 첫 번째 생일은 엄마 있는 아기들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치를 수 있게 해주겠다고.


6개월이 지나 아기의 첫 번째 생일이 도래했다. 아기의 진단명이 ‘무뇌수두증’인한 아기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을 걸 우리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 동안 최대한의 행복을 느끼길 바랐다. 자명한 사실을 부정하는 마음을 담아, 부정하는 마음이 더 크면 혹시라도 아기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렇게 우리는 성대한 돌잔치를 치렀다. 누군가는 케이크를 사 왔고, 누군가는 아기가 먹는 걸 시도해 볼 만한 과일을 사 왔으며 손재주가 좋았던 누군가는 돌잡이 용품을 직접 만들었다. 웃음과 행복과 희망이 충만한 시간이었다. 모두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기는 오랜만에 하루 종일 안정 상태였고 돌잡이로 청진기를 쥐었다. (사실 거의 들려주었지만) 태어난 이래 입으로 먹는 대신 비위관을 통해 분유를 먹던 아기는 그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딸기의 무른 부분을 세입 정도 쪽쪽 빨아먹었다. 생전 처음 ‘맛’을 느껴본 아기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희망은 이름자를 따라 병동 식구들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희망이 있어 우리는 웃는 일이 많았다. 아기에게 첫 유치가 보였을 때 그 쌀알 같은 이가 너무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아기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걸 좋아했다. 보통사이즈의 대야가 아기에겐 그럴듯한 욕조가 되었다. 아기의 노곤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병원 밖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쑥대밭이었지만 희망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며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1화돌고돌아 다시 병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