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사람 있어요!

by 생각많은인프제

처음 발령받았던 병동에는 테라스가 작게 딸려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밖을 나가면 새빨갛게 불타며 넘어가고 있는 절경을 볼 수 있는 나만 아는 장소이기도 했다. 불타는 해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입이 벌어지고 집어삼켜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병원 옆으로는 수많은 차들이 속도를 높여 지나다니고 있었다. 아주 가끔, 사실은 매우 자주 아주 큰 소리로 외치면 불타는 태양에 집어삼켜진 와중에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도 사람 있어요!!!!!!!!!!!!!!!!!!!!”


인사이동 후 지방에 살고 계신 부모님이 딸의 근무지가 궁금하다며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오셨다. 근무처를 본 부모님은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며 신기해하셨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는 서울의 아주 끝자락. 병원 주변엔 얕고 높은 산들이 있었고 건물보다는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지금이야 그래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있고 차들도 많이 다니지만, 병원의 처음을 돌이켜 상상해 보자면 정말이지 꽁꽁 숨겨져서 그 누구도 모르는 곳이었겠다 싶다. 부모님은 농담 반 걱정 반으로 딸이 사실은 직장에서 큰 잘못을 저질러 유배 온 게 아닌지 의심 아닌 의심을 했고 나는 이 우스운 오해를 덜기 위해 아주 많은 설명을 해야 했다.


비슷한 맥락의 오해는 병원에 실습 나오는 간호대학생들의 표정에서도 느껴졌다. 어린이병원이라 아동간호학 과목의 실습을 나오는데, 사실 병원엔 어린이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정상 발달하고 있는 아동에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병태생리를 알려 줄 뿐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떨어져 정상화될 수 없는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수업은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에서 이주 남짓한 시간 동안 약간의 실망 어린 표정으로 떠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나 역시도 학생이었다면 비슷한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없는 어린이병원’


아주 큰 모순 같지만, 그것이 우리병원의 정체성이다. 입원당시엔 모두가 어린이였으나 지금의 시간까지 그저 시간을 버티며 살아온 무소의 뿔 같은 의지가 담겨있는 아주 이상한 병원. 일만 일의 재원일수를 넘기는 이가 많고 다들 몇천일은 우습게 넘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긴 시간에 숨이 막혀오지만, 또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흘러가는 병원. 환자 한명 한명의 기구한 사연이 녹아있는 병원. 이런 곳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또 그 안에서 땀방울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나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병원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은 대체로 마주하고 있는 산의 흙벽이었다. 나무들은 대체로 키가 훤칠했고 계절마다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으나 동트기 전 가장 어스름한 때에는 종종 기괴하기도 했다. 반대 방향에서는 속도를 높여 달리는 큰 도로와 하늘이 보였다. 나는 종종 여기가 사실은 병원이 아니고 감옥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날이 너무 좋을 때는 대비감이 너무 심해서, 우중충하게 비가 잔뜩 오는 날이면 그런 날 대로 너무 흉흉해서 그러했다. 3년을 병원에 있으며 보호자에게 환자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는 건 손에 꼽았다. 부러 찾아와 면회를 하는 건 굳이 반대쪽 손을 펼칠 필요도 없이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었다. 감옥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보호자가 있었던 환자 던, 모종의 이유로 보호자에게서 떨어져 시설 입소 후 입원한 환자 던 결국은 세상과 단절되는 결말을 맞았기 때문이었기에.


아주 깊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여기 누워 있는 이들도 태어나는 그 순간에는 부모가 있었을 텐데. 병원 밖 어디선가 이들과 닮은 얼굴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단전에서부터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끓었다.

“00 어머니!!!!!!!!! 00이 잘 지내고 있어요!!!!!!!!!”


아무도 찾지 않는 환자들이 누워 있는 곳에서 간호사는 가장 바빴다. 오직 간호사만이 이들의 안부에 관심이 있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수시로 바꾸어 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목욕도 시켰다. 식사 시간과 물 먹는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종종 새로 입원 하는 환자들이 ‘변비’진단명을 가지고 왔는데 대체로 병원에서 몇 개월만 있으면 해당 진단명이 사실과 거리가 멀었음이 밝혀지는 게 부지기수 였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도 이들도 뭔가를 느끼면 표현을 했다. 즐거우면 웃고 불편하면 크게 울었다. 덥고 습한 날 보다 서늘하고 건조한 날에 오래도록 편안하게 수면하였고 졸리면 칭얼거렸으며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거나 토닥거려주면 안정을 찾는 게 눈으로 보였고 몸으로 느껴졌다.


이들의 부모는 모르는,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관심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간호사는 알았다. 이야기가 쌓일 때면 나는 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혼이 난다. 입을 쩍 벌리고 다가오는 태양을 향해, 속도를 높여 달리는 차들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보면 한 번쯤은 누군가에겐 가서 닿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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