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숨이 꺼지는 그 순간까지도 구슬프게‘엄마’를 불렀다. 아이는 말을 배워본 적도 없었고 생전 형태를 갖춘 말을 해본 적도 없지만 ‘엄마’라는 단어만큼은 그렇게 뚜렷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를 찾아 눈을 감았다.
다섯 살 남짓 된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무연고자 행려 환자였다. 아이는 자주 울었다. 울음의 이유는 아이만이 알 터였지만, 울음의 표현은 하나였다. 말을 배워본 적도 없고 생전 형태를 갖춘 말을 해본 적도 없지만 을음소리만큼은 뚜렷했다. 마치 무의식 속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듯이. 아이는 갓난쟁이 아기를 안 듯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주어야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아이는 울지 않을 땐 매우 개구졌고 귀여웠다. 눈이 동글동글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태어난 이래 평생을 누워만 지냈던 탓인지 아이의 뒤통수는 판판했다. 호떡을 눌러둔 것 마냥 둥글둥글 넓덕하게 눌려있는 게 아이를 더 귀엽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한 달에 한번 이발 주간이 다가오면 병동에 손재주 있는 선생님들이 아이의 머리를 아주 멋지게 만들어주었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서 모두가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지나가곤 했다.
아이는 자주 엄마를 찾았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었다. 엄마를 기억하느냐고.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 뱃속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기억이 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던데, 이 아이도 그러한 기억이 있는지 궁금했다. 엄마의 얼굴은 몰라도 무의식 속에 각인된 원형(原型)의 엄마는 강렬하게 남아있는 게 아닐까. 아이의 울음소리는 가끔은 ‘응애’로 들리기도 하고 ‘음마’라고도 들렸지만, 대부분은 ‘엄마’로 들렸다. 아이는 말을 배운 적이 없었다. 말을 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엄마’였다. 아이는 바로 눕는 것 보다 옆으로 돌아 태아 자세를 취해주면 편안해했다. 눈을 살짝 가려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아했고 보듬어 안아 등을 토닥여 주면, 안정을 취했다. 어느 순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것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기억임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이가 엄마의 뱃속부터 간직하고 있는 기억임을.
아이는 태어난 후 채 6년을 살지 못했다. 무뇌수두증을 진단받은 아이들은 임상적으로 3년쯤 산다던데. 아이는 오래 산 편이라고 했다. 아이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2-3달 전부터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신경학적 증상들도 그 강도와 지속 기간이 길어졌다. 아이는 자신의 힘이 남아있는 순간까지 엄마를 불렀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차가워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는 아이의 엄마를 대신하여 사과했다. 너의 어미도 너의 존재를 알았을 때 매우 기뻐했을 것이라고. 너의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세상 밖으로 나온 너를 만났을 것이라고. 너를 끝까지 품에 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이는 떠났지만, 무의식에 각인된 원형(原型)의 기억들은 이토록 강렬한 것임을 알려주었다. 아이의 어미와, 그 어미의 어미와, 그 어미의 어미의 어미와 그렇게 거슬러 올라 최초의 어미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원형의 기억들은 나에게도 있을 터였다. 문득문득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맴도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아이가 돌아간 곳에선 엄마를 만났는지 궁금해진다. 아이가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곳에서 더 이상 구슬프게 엄마를 찾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도 병원에서 기억에 없는 엄마를 찾으며 구슬프게 울고 있는 아이들을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