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되어보겠다고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도저히 못 해먹겠어서 병원을 그만두었다.
병원과 거리가 먼 삶을 오래도록 살았다.
그러고 났더니 다시 병원에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어떤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임상간호사를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인사 발령이 있기 전 팀장님과의 인사 상담에서 했던 말이다. 다시는 간호사 안 하겠다고 유니폼을 벗고 나온 지 6년 만에 다시 병원에 가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조금은 당황한 팀장님의 표정이 여전히 눈에 선 하다.
우리 시 간호직 공무원에겐 두 가지 진로 선택지가 있다. 보건소에서 일하며 행정업무를 하거나, 시립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환자를 돌보거나. 처음 입직할 때는 병원 근무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임상간호사를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해놓고 나조차도 조금은 우스워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마음속 한구석에 아주 작게 남아있던 미련이 이제야 드러나는 게 우습기도 했다. 팀장님, 저도 제 마음이 왜 이리 변덕스러운지 잘 모르겠어요.
짧고도 굵게 호되게 당한 간호사 생활이었다. 정신 차릴 수 없게 짜릿하고 매콤했으며 스쳐 지나가듯 단맛도 났던 시간이었다. 어느 날엔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면서 집까지 하염없이 걷기도 했는데, 고3 입시상담에서 나를 뜯어말렸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땐 왜 그렇게 고집스러웠는지. 참으로 나답다고 느끼면서도 고집 피우던 과거의 내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나의 알량한 재주와 노력으로 타인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종종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힘듦으로 가득했고 주변인들은 점점 내가 옛날의 내가 아닌 것 같다며 변해간다고 걱정했다. 그러한 시간이 쌓이며 도저히 못 해 먹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을 때 병원을 그만두었다. 수십 년째 이어져 오는 간호사 국가고시 합격률 100%를 망칠까 두려워하며 한겨울 한파를 뚫고 받아 든 면허증만이 퇴사한 내게 남았다. 이 면허증 한 장이 나를 어디까지 이끌어 줄 것인지 고민하고 부딪히며 한번 알아내 보자고 다짐했다. 쉽지 않을 시간이 될 테지만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는지 스스로 다시금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면허증을 찢어서 허공에 날릴 것인지 오래도록 간직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너덜거리는 마음을 기워 다시 쓸 만한 상태로 되돌리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기대를 하지도, 받지도 않는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기웠다. 우툴두툴하고 여기저기 실밥이 튀어나왔지만, 서툰 솜씨로 회복한 마음을 데리고 나는 여러 일을 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을 잘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는지, 어떤 상황을 어려워하는지, 그럴 땐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해나가야 하는지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끼고 배웠다. 아주 많은 것들을 몰랐음을 깨달았고 우물 밖에서 생존하는 법을 점점 터득했다.
얼마큼의 시간이 흘렀을 때 문득 쳐다본 면허증은 색이 조금은 바랜 것 같았고 슬프면서도 놀랐다. 어린 마음에 고집스레 우겨 선택한 진로였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으나 어느 순간에 삶이 의미 있음을 느끼는지는 알았다. 나는 나의 작은 도움으로 다른 사람이 행복함을 느낄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 여겼고 간호대학에 진학하겠노라 고집스레 우겼던 것이었다.
그 순간, 오래도록 물음표를 가진 질문에 답이 내려짐을 깨달았다. 정말 적성에 맞았던 것은 병원 일이라기보단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웃음을 줄 수 있었던 것임을. 병원 생활 중 짧지만 스쳐 지나가는 단맛 같은 시간은 대체로 고맙다고 잡아주는 손의 온기에서, 차갑게 식은 김밥을 욱여넣고 있을 때 부러 불러서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는 주름진 어느 할머니의 손길에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어 마음이 안심된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표정에 있었음을.
다시금 나의 면허증이 원래의 색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간호사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딱 한 번이면 족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병원 로비에 서 있다. 운명이 얄궂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날 것이었으면 매몰차게 뒤돌아보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가지 아주 먼 길을 돌아 이렇게 다시 병원 로비라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의 어떤 흐름이 있다는 걸. 그리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인생의 어떤 흐름에 몸을 맡겨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