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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시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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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Nov 29. 2024

관계의 쉼표

나이테처럼 안팎이 촘촘히 이어지는 변함없는 관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이어지는 그런 관계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관계가 과연 있을까?

가족이라 해도 때로는 나이테가 삐뚤어지고 어느 한 부분은 텅 비어 있기도 하잖아

가까운 만큼 더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기대가 깊은 만큼 실망도 크니까

완벽한 관계를 꿈꾸면서도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꾸 깎이고, 틈새가 생기고, 

때로는 멀어지는 걸 반복해

내가 아무리 붙잡으려 애써도 점점 닳아가는 관계들. 

어쩌면 그 부서짐이 내게 주는 신호일지도 몰라. 

 "이제는 놓아줘도 돼, " 하고


기다리게만 하는 사람.
그저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나의 시간을 가져가는 사람
언제나 그 사람의 필요에 맞춰 나의 시간을 내어주어야만 했던 관계.
처음에는 그것이 배려라 믿었어.
상대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아니었어.
그건 상대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더라.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 관계였을 뿐.

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언제나 속이 불편하고 마음이 저릿했던 기억들

분명히 웃었고, 대화도 나눴는데 가슴 한구석이 헛헛했던 그 느낌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무게를 혼자서 끌어안고 있더라. 

마치 내가 아니면 관계가 끝날 것만 같아서.

사람 사이의 거리를 둔다는 건 결코 실패도, 도태도 아니야. 

때로는 내가 진짜 소중히 하고 싶은 관계를 위해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인 거지. 

그걸 몰라서 자꾸만 붙들었을 뿐.


알잖아. 사람의 만남은 건 참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누군가는 "지구가 온다"는 표현까지 쓴다고 하잖아. 

그 정도로 관계를 쌓는 건 기적 같고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나를 잃지 않으려면, 무거운 관계는 잠시 내려놓아야 해.


쉼표, 괜찮아. 멈춘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쉼표 하나가 문장을 더 깊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니까.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용기야. 너를 갉아먹는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 

누군가가 네 시간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네 마음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때는 멀어져도 괜찮아. 

그 여백 안에서, 너는 더 단단해질 테니까.


그러니까 잠시 멈춰도 돼. 지금 그 자리에서 너 자신을 보듬어. 

너를 돌보는 게 결국 더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테니까. 

삶도 관계도, 쉼표가 필요해. 그리고 쉼표 뒤에는, 분명히 더 나은 문장이 이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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