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by 이런이유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지금껏 케이크를 만들며 깨달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균형이다. 잘 만들어둔 제누아즈도 균형 있게 재단을 하지 않으면 고른 모양으로 층을 쌓아 올리기가 어렵다. 시트 사이에 바르는 생크림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어느 쪽은 생크림의 양이 많아지고 또 다른 부분은 부족하게돼 이 역시 모양을 흐트러트린다. 중간에 채워 넣는 과일을 균형 있게 넣지 않으면 어느 한쪽을 먹는 사람은 과일이 없는 채로 케이크를 먹게 되고 조각케이크의 단면이 들쑥날쑥이다.


처음엔 모든 과정을 나 혼자 만들었지만 자연스럽게 남편과 업무분담을 했다. 내가 제누아즈와 생크림을 준비해 두면 빵 사이에 생크림과 과일을 조합하는 샌딩 작업을 남편이 하고 마무리 아이싱과 최종 작업인 장식 부분을 다시 내가 하는 식으로 일의 패턴을 잡아왔다. 균형의 중요도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건 남편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속작업의 균형이 일부 맞지 않더라도 아이싱으로 잘 덮어서 균형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마무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도 쉬운 날이 없던 상황에 늘 지쳐있는 상태로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남편의 ‘균형’ 어쩌고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대충 ‘응 그래그래 균형도 맞으면 좋겠지. 속작업은 그대가 하는 일이니 잘해봐’하는 생각으로 흘려들었다. 1분이라도 이른 퇴근의 욕구가 치솟는 어느 날에는 균형을 맞추겠다며 공을 들이고 있는 남편이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균형이 잘 맞도록 속작업이 되어있는 케이크를 다루는 것이 그다음 아이싱 작업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난 4년간 수 없이 겪은 실패와 시행착오는 보상과 같이 제법 우리만의 노하우와 속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줬다. 그 덕분에 균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반듯한 케이크의 모양뿐이던 우리에게 일상의 균형까지도 생각해 보게 됐다. 매주 화요일은 매장의 정기휴일이다. 하루의 숙성을 거쳐서 판매하는 케이크의 특성상 하루의 휴일에도 다음날을 위한 일을 하기 때문에 정작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진짜 휴식을 위한 휴일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자정을 초 저녁쯤으로 느끼던 날들은 지나고 남들이 보통 저녁을 먹는 시간쯤엔 퇴근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의 횟수가 많아졌다.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면 여전히 자정까지 해야 할 집안일들이 끊이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집안에서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감격 포인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고 어두운 터널 끝의 빛을 느끼게 된 정도의 간접적인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런 결과물을 바라고 균형맞추기에 참 많이도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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