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과 가난의 상관관계

by 이런이유지

어릴 적 나는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특정 직업에 대한 욕심보다 주거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그 속에 사는 어른이 된 나를 상상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삼 남매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삶이 버거웠던 부모님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유치원 꼬마일 때부터 치마 입기를 고집하고 세상의 예쁜 것들에 관심이 많던 성향이 그 영향이다. 초등학교 시절 언니와 똑같은 책상을 나란히 두고 작은 방을 나누어 썼다. 내 왼쪽책상 자리에 앉아 색종이로 이것저것 만들어 붙이고 못 그리는 그림도 그려가며 벽과 책상을 꾸미던 장면이 책을 잡고 공부하던 기억보다 많다. 그래서 지금은 집을 멀끔하게 정리 정돈하며 살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올시다. 일과 육아에 쫓기는 삶에 그림 같은 내 집 같은 건 없다. 아이란 존재는 또 어찌나 어지르기를 좋아하는지 집안 상태는 언제나 내 의지와는 반대를 향해 간다.


한창 야근을 많이 하던 작년 여름 우리는 바닷가 앞의 원룸 3개를 빌려서 살았다. 1호에는 나와 남편이, 3호에는 육아를 도와주러 내려오신 부모님이 그리고 비교적 크기가 작은 2호는 에어비앤비를 돌렸다. 사는 곳이 관광지이고 집 구하기 어려운 동네라 아는 어르신 집 2층을 빌려서 살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욕망의 크기가 얼마건 상관없이 일에 시달리고 정리에 재능이 없는 남편과 육아를 하며 살다 보니 작은 집의 상태는 늘 엉망이었다. 잠자는 시간마저 3시간 남짓이라 퇴근 후 씻는 것조차 일로 느껴졌으니 집안이 너저분한 건 당연했다.


가난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상처로 남아 살면서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이유로 나를 위축시켜 왔는데 이번엔 정리안 된 집이 화근이었다. 수납공간 넉넉하지 못한 우리의 주거공간은 구석구석 물건들이 정돈 안된 채로 쌓여갔고 그 모습은 내면의 상처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주로 괜찮았지만 한 번씩 우울감이 몰려왔다. 그럴 때면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역시 파김치가 되어있는 남편에게 울분을 쏟아냈다.


“어릴 때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하던 그 동네 그 집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아직도 내가 사는 집은 이모양이고 이런 상태는 꼭 가난을 증명받는 것 같잖아. 일을 이렇게나 많이 하고 사는데도 나아지는 느낌이 없어. 일을 안 할 때는 돈만 없었는데 일을 하니까 시간까지 없어져버렸어.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면 뭐가 좀 나아지긴 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본인이 더 많이 가진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신파극이 따로 없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와 새로운 일을 한 번에 감당하다 보니 심리적 압박을 많이 받는 날이면 생각은 늘 부정의 줄기를 잡고 끝도 안 보이는 땅굴속을 향했다. 좋은 것은 보지 못하고 부정의 기억만 가득 모아둔 저기 저 구석 다락방 문을 기어이 열고 들어간다. 모든 힘든 상황의 원인을 잠자코 있던 가난에게 돌려버린다. 뭐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부와 행복 뭐 이런 것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가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난했다가 또 비교적 풍족해지기도 했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나는 내가 정한 기준에 빗대어 가난해지기를 자처했다. 극단의 피로가 몰아닥친 후 올바른 판단이 어려운 이런 날은 스스로 이성을 되찾기 힘들었다. 이런 면에서 나보다 89배쯤 성숙한 남편은 그런 내게 덤덤한 말들로 위로를 전하고 세상 불행한 쭈글이가 된 나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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