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야근이 야야야근이 된 이유

야근, 야야근, 야야야근

by 이런이유지

야근이 야야야근이 된 이유는 야근도 시간대별로 세분화해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 가족에게 넘치는 애정을 주고 있는 지인들로부터 어제는 몇 시에 들어갔냐는 질문을 항상 받았다. 처음엔 시간만 언급하다가 인스타그램에 야야근이나 야야야근의 표현을 사용한 후로 그렇게 부르게 됐다. 몇 시간 정도의 연장근무는 당연했고 그 다음 단계를 야야근 또 그다음을 야야야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대충 11시까지를 야근, 2~3시쯤을 야야근, 4시를 넘어 5시가 넘기고 날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면 야야야근이었다. 철야라는 단어는 왠지 중노동이 필요한 현장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 정도 힘든 일 까지는 하지 않는 내가 사용하기엔 고생이 좀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영업종료 후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두 번째 출근을 한다. 나는 냉장고 바지에 남편의 커다란 티셔츠로 갈아입은 후 머리도 올빽으로 대충 고쳐 묶은 상태이고 남편은 피부를 입은 듯 편해서 천사옷이란 별명을 가진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해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란히 선다. 주방에 들어서면 왼쪽에 카운터가 있고 홀을 바라보는 앞쪽 작업대와 오른쪽엔 벽을 바라보는 뒷 작업대가 있다. 영업시간 중에 나는 주로 뒤에서 작업을 하는데 영업을 마치면 앞으로 옮긴다. 정면 선반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어제 보던 드라마를 이어보기 한다. 야간작업도 오래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귀로 드라마를 보면서도 작업에 방해받지 않았다.


저녁 8시쯤부터 자정 그 사이 시간에는 근처에 사는 친한 이웃들이 밤 산책 하듯이 가게에 들러 야근 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비록 몸은 일에 묶여있지만 편한 사람들과 차분한 밤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우리에게 소소한 위로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남편과 둘이서만 일 하다 보면 우리에게도 마음 맞는 직장 동료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 소재가 ‘회사 내 이야기’ 혹은 ‘형사 이야기’인데 어찌나 동료애가 찐한지 만들어진 이야기임을 알고 봐도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군가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대신 우리에겐 찾아와 주는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직장 동료이다. 늘 가까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필요한 순간에는 서로 발 벗고 나섰다. 깊게 쌓인 피로에 잔뜩 예민해져서 주로 사소한 이유로 남편과 냉전을 벌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기막힌 타이밍에 맞춘 우리의 비공식 직장 동료들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져 수렁에 빠진 감정을 건져 올리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종종 마주치는 앞집 어르신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어두웠던 집 앞이 환하게 밝아져서 좋다고 말씀하셨다. 시골에서 장사하면서 이웃 간의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고 들었는데 늘 우리를 호의적으로 대해 주시는 앞집 삼춘(어르신을 칭하는 제주말)에게 차마 ‘저희 소원이 해 지기 전에 퇴근하는 거예요’라는 속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앞집 옆집 뒷집에서 밤에 켜 놓은 불이 방해가 된다거나 일하는 소음이 시끄럽다거나 하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사실에 감사하며 당분간은 이 한적한 시골길을 밝히는 등대로서 존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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