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하루 안에 끝내지 못하고

퇴근을 퇴근이라 부르지 못하고

by 이런이유지

마법의 시간 12시가 되면 동화 속 신데렐라는 어여쁜 드레스와 호박마차를 잃고 나는 평정심을 잃는다.

끝을 알 수 없는 야근의 날들이 이어지며 아침에 눈을 뜨면 나와 남편은 ‘오늘은 어떻게 해야 일을 일찍 마칠 것인가?’를 제일 먼저 고민했다. 밥을 집에서 먹을 것인지 싸가지고 가서 먹을 것인지부터 마트를 같이 갔다가 갈지 나를 가게에 내려주고 남편이 혼자 다녀올지 그리고 오늘 일의 순서를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 일지 따위의 생각들로 오전을 시작한다. 일 하는 내내 뭐라도 빨리 해치우고 싶어서 한 번에 두세 가지를 하려고 하다가 실수를 하기도 한다. 반죽기가 돌아가는 동안 다른 계량을 한다던지, 마당에 나가 꽃을 따온다던지 하는 요령을 부리다가 반죽기 안의 내용물을 망쳐버리는 식으로 일을 두 번씩 하기도 했다. 후회할 시간도 아깝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뼈에 새기는 순간이었다.


영업시간 중에는 퇴근을 향한 우리의 굳은 다짐과 전투력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홀케이크 예약이 많으면 시간 맞춰 장식하느라 시간을 빼앗기기도 하고 손님과 나누는 대화가 길어지기도 했다. 특히 일부러 찾아와 주는 지인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외 모든 시간은 오로지 빠른 일처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태이다. 이런 노력의 유일한 보상은 자정을 넘기기 전에 퇴근해서 잠자는 아이의 손에 발에 이마에 볼에 뽀뽀 한번 더 하다가 자는 것인데.. 째깍째깍 시간이 자정을 넘어가면 전전긍긍 주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종일 서서 일만 하던 내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루 중 있었던 사소한 즐거움마저 잊힌 채로 억울한 마음만 남는다. 오픈 이래로 휴식 다운 휴식도 없이 일을 하고 있으니 퉁퉁 부은 다리는 가라앉을 새도 없이 보랏빛 터진 실핏줄의 개수만 하나 둘 늘어간다.


시간이야 흐르거나 말거나 낮이나 밤이나 말 지겹도록 안 듣는 생크림을 휘저으며 옆에 있는 남편을 향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왜 제주까지 와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나는 왜 지금 이러고 있는 걸까? 우리가 다른 지역으로 갔다면 거기서 또 이러고 살았을까? 서울에 계속 있었으면 서울에서 이 일을 했을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뭘까? 나 백수로 몇 년 좀 놀았다고 벌칙 같은 건가?” 이쯤에서 끝나면 다행이다. 바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신세 한탄이다. “지금 내 눈에 제주도에는 물려받은 땅 위에 집 짓고 가게 짓고 생활은 휴양처럼 일은 취미처럼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나는 왜 물려받을 재산 하나 없는 인생일까? 일개미로 태어나서 일개미로 살다가 끝날 운명일까? 단지 흙수저라서 이 고생일까? 정말 그 이유가 전부라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언젠가 이 지독한 야근에서 벗어나 오늘을 추억할 날이 올까?”


한바탕 타령을 끝내고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일하며 귀로도 볼 수 있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뉴스 등을 번갈아 본다. 그렇게 2시가 되고 3시가 되면 화가 올라올 타이밍이다. “이건 아주 지독한 벌칙임이 분명해.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 으악 짜증 나아~” 또 그렇게 4시가 되고 5시가 넘어서야 일이 마무리된다. “어차피 3시간 있다가 나올 텐데 대충 마무리하고 가자” 이쯤 되면 이건 퇴근이 아니고 탈출이다. 얼추 정리를 하고 나와 차에 앉으면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다. 몸은 그대로 시트로 흡수된 것만 같다. 몸은 시트 속으로 사라지고 머리통만 돌기처럼 남아 흔들리는 자동차 진동에 맞춰 덜렁덜렁 달려있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 그대로 방으로 슬라이딩. 옷도 그대로 입은 채로 남편과 마주 보고 누워 ‘씻어야지 씻어야지’를 되뇌다가 방안에 불도 환하게 켜둔 채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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