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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Apr 21. 2022

Prologue_깊은 곳 가운데서 생각하는 것들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시험관 고차수 난임에세이 


마음속 깊은 곳 가운데서 나도 눈치채지 못하게 돌아다니는 생각들이 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었고, 그러다가 지독한 아픔으로, 어느 날은 분노도 되었다가, 어떨 때는 감사로 이어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반된 감정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움직였다. 그 생각들 중 일부는 말이 되어 누군가에게 툭 전달이 되기도 했는데, 내뱉은 말 중 후회가 되는 것도 있고, 이것 말고 저걸 꺼냈어야 하는데 싶은 것도 있다. 대놓고 드러낸 적이 없어 저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이라 쏟아질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독한 호르몬의 변화로 나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넘어졌을 때에는 쏟아진 것들을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고, 그 얼룩은 지워지지도 않아 또 다른 생채기로 남기도 했다.


경험은 값진 것이다. 보통 값진 것을 얻기 위한 대가는 일반적인 시장논리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험으로 얻는 가치는 귀하지만 그 과정이 달콤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이론 정도는 나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살면서 대충 보고 들은 것이나 겪어 본 것이 이젠 꽤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륜에 상관없이 뭐든 새롭게 하는 경험은 낯설고 쉽지 않은 것. 이번 경험은 내가 그동안 겪었거나, 또는 간접적으로 들어서 알던 다른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이번엔 이걸 한 번 살아내어 보라고 허락이 되었는지, 이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잘 겪어내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얼마 전 남편이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과 생각들, 묵상들을 글로 써보면 어떻느냐고 제안을 해 주었다. 감정 기복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닌 헛소리가 나온다거나, 별로 귀 담을 필요 없는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았던 몇 번의 경험 이후로는, 안 그래도 없던 말 수를 더욱 줄이고 사적인 만남을 꽤 오래 자제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나마 (남편에게도 다 나누지 못한 마음과 생각들이 많다)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유일한 존재였던 남편. 그는 어떤 의미로 무슨 뜻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나의 메모장에는 꽤 오랫동안 겪은 하루하루의 경험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적혀져있다. 누구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어디 공개할만한 수준의 문장들도 아니거니와, 또 내 마음을 어디에 오픈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대나무 숲 같은 공간에 그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문체로 적어왔던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한번 써볼게, 라고 했더니

시간이 지나면 까먹어, 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고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이 경험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가 온다면, 조금씩 그 기억들은 흐릿해져 갈 것이다. 뭐 좋은 기억이라고 선명하게 기억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지난 수년 하나님 앞에 '도대체 왜?'라는 외침을 수십 번 수백 번 올려드릴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심어주신 마음들이 있어, 그 경험들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순간순간 주셨던 마음은 기억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 꼭 이 땅이 아닌 천국에서라도, 이 기억의 퍼즐들이 맞춰지며 당신의 계획하심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깨닫는 날들이 오겠지.


어떤 기억은 꺼내야 하고, 아직 머물러 있는 어떤 마음은 잊기 전에 적어야 한다. 원망과 감사, 두려움과 담대함, 분노와 이해가 번갈아 적혀나가는 흐름이 참 엉망인 글들이 되겠지만.



시험관 고차수이고, 난임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오랜 노력과 소망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글까지 써서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정리해봅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바람이 해피엔딩이 아닐진대,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며 나에게 이 경험이 왜 찾아왔을지 사유해봅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겐 부디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연재를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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