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바닥 Oct 07. 2023

5. 31살에 사표를 냈다.

퇴사를 말하며, 사직서를 내던 그날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나 자신' 때문이다. 4년 하고도 8개월간 다녔던 회사에서 벗어난다는 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 게 언젠가부터 너무 싫었다. '누군가에겐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회사'였다. 너무 힘들었고 퇴사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기 시작한 게 3년쯤 되었다. 


2023년 3월, 자궁근종 수술을 했다. 자궁근종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그 가장 큰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추측하는 인터넷 글들이 가득할 뿐이다. 수술대에 누웠다.


'마취하고 못 깨어나면 어쩌지'


차가운 수술대만큼이나, 불안감은 나를 크게 감싸안는 기분이었다. 


'깨어나면, 회사 가야겠지... 퇴사하고 싶다' 


수술대 위에 누워서까지 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칠 대로 지쳤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잘 깨어나서 회복하고 출근을 했다. 2주간의 휴가, 그나마도 13일 만에 금요일에 출근하겠다고 말한, 나에게 부장님이 크게 화를 냈다. 기껏 금요일에 나와 뭐 할 거냐는 고함, 그 고함에 하루를 더 채워 14일 만에 출근이었다. 


회사에서 수술에 대한 복지금으로 600만 원이 입금됐다. 한편으론 좋고, 한편으론 씁쓸했다. 재작년에 1년간 했던 야근시간의 총합이 200시간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200시간은 내 몸과 마음을 갈아내서 얻은 결과였다. 내가 건강을 잃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건강을 잃게 했으니 돈으로 보상하는 건가' 


애초에 이 회사만 아니면, 아프지 않았을 것 같다. 마를 날 없이 매일 울며 일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일하지 않았다. 한 번의 발령이 있었고, 새로 간 부서의 일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얕은 강도의 업무에 매일 이른 퇴근,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불행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발령, 맞지 않는 직무, 멈춰버린 성장


30대의 나는, 29살의 나보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새로 발령받은 부서에서 첫 1년은 버텼다. 일하다 보면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날 수도 있고, 또 애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다 보면 괜찮아질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발령은 항상 회사가 선이었고, 제일 필요 없는 인력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새로 발령 난 부서에서 부장은 '가장 필요 없는 인력'으로 나를 지목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를 받은 적이 없어서라는 게 이유였다. 보고는 수없이 했다. 그저 그들이 보기에 내 업무가 쓸모없어 보였을 뿐이었다. 


하루는 부장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물었다.  관리하던 회사 SNS계정을 보여줬고, 부장은 헛웃음 섞인 비웃음만 남겼다. SNS계정의 유입률도 보고 했으나, '고작 인터넷으로 문의해 고객이 계약을 체결하겠냐' 며 내 업무가 쓸모없는 짓이라고 규정했다. 


속이 쓰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부장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하직원이었을 뿐이었다. 마음을 찌르던 문장은 너무 많지만, 그저 회사에서 버티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지 않은가. 내 월금엔 '욕값'도 포함된 거라고. 그렇게 따지니, 내 월급이 턱없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3년 동안 거의 매일밤 퇴사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아마 내 길고 긴 퇴사에 대한 한탄을 듣는 엄마도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있는 힘껏 괴롭혀가며 버텼다. 괜찮을 듯 괜찮지 않은 회사생활을 이어가던 중, 결국 나는 부장의 도를 넘는 발언에 사표를 냈다. 아니, 사표를 낸 그날을 떠올려보자니 '던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부장님의 그간 언행은 언어폭력이었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떨리는 목소리와 흐르는 눈물을 급히 훔치며 저 말을 하곤, 사표를 냈다. 사표를 내고 나면 모든 게 다 홀가분할 줄 알았다. 사표를 던진 첫날, 부장님은 다음날 다시 대화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얘기는 돌고 돌았다.(글' 부장님 저는 검은색으로 회사에 해악을 끼치려는' https://brunch.co.kr/@llonv/140 , 글 '부장님은 검은색이 싫다고 하셨어' https://brunch.co.kr/@llonv/139)


사표를 쓰는 날 부장에게 말했다. 

"저는 회사에 해악을 끼치려고 검은색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고, 그것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의 저 말에 부장은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자기가 언제 검은색을 고른 게 회사를 망치려고 골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가 골자였다. 


부장은 '회사 매출도 떨어지는데 검은색 나눠줘 가지고, 상갓집 소리 나오면 누가 책임질래?'라고 말했지, 저런 식으로 말한 적 없다고 했다. (그게 그 말 아닌가. )


나는 분명 저 문장들과 함께 '매출도 떨어지는데, 거무죽죽한 다이어리 들고 직원들이 일제히 회의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어떨지 생각이나 해봤냐'라고도 덧붙이며 추궁을 했던 목소리가 분명히 기억난다. 


하지만 말한 사람은 말한 적이 없단다. 나는 분명 들었는데, 자긴 말한 적이 없으니 내가 오해한 거란다. 그때 글로 적어둘게 아니라 녹음을 했어야 했나 보다. 


자긴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단다. '내가 어제와 오늘이 다른 말을 하는 애'라 '나 혼자 착각한 거니 오해 풀고 나가라'라고 했다. 도대체가 이 포인트에서 내가 뭘 얼마나 잘 들었어야, 오해를 안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표를 썼다. 사직서의 퇴사 사유에 '업무에 대한 존중 없음'을 수십 번 썼다 지웠다. 결국 좀 더 유한 문장을 찾아 '좀 더 전문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의 전향 필요'라고 문장을 고쳤다. 


다들 보통 퇴사사유엔 '개인사유'를 적고 나온다는데, 난 뭔가 그렇게만 적긴 억울했다.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올해가 지난 후에 천천히 이직할 생각이었다. 면접도 여러 군데 마음 편히 보러 다니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유튜브 준비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부장은 이런 내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보란 듯이 나를 괴롭혔다.  부장의 언어를 빌리자면 '부장으로서 부서가 잘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기엔, 부서의 군기를 잡으려는 희생양으로 날 활용한 걸로 밖엔 안보였다. 


결국 사표를 수리하는 날까지, 부장은 내게 사과는커녕, 눈길 한 번을 안 줬다. 


아. 항상 내겐 점심시간에 '점심 먹으러 안 가냐'라고 묻지 않더니(모든 부서원들에겐 이름을 불러가며 다 묻는다) 얼마전에 내게 '점심 먹으러 안 가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요즘 부쩍이나 기분 좋고 상냥한 목소리를 하고 다닌다. 고함도 덜 치는 것 같은 게, 아무래도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긴 했나 보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진짜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복잡하다.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4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붙은 장소를 떠나려니 마음이 쓰리다. 마지막 출근까지, 휴일을 포함해 5일 남았다. 


수술했던 자리가 욱신거리며 아프다. 너무 아파서 재발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아마, 이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충분히 재발하고도 남았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본다. 이제 다 끝났으니 이 병치레도 끝나길.




작가의 이전글 4.퇴사를 했지만,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