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다 달려버린 임신 13주~16주의 기록
세번째 임신, 둘째 임신이어도 항상 의문이었던 점. 정말 임산부는 안정을 취해야할까?
계획하고, 기다린 임신이지만 그 와중에도 들었던 질문, '운동을 계속하면 안되는걸까?'에 대한 답을 이번에는 꼭 찾고 싶었다. 첫째 임신때는 코로나19여서 실내 운동 및 실외활동은 거의 못했고, 그 여파는 다리 곳곳에 남아 말랑말랑한 다리를 마주하게 했다. 첫째를 낳고 50일 만에 밖으로 뛰러나갔을 때, 내 다리에 근육이 엄청 빠졌음을 체감했다. 무릎이 아픈 이유는 산후조리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근육이 빠져 무릎에 무리가 갔던 것. 그런 경험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둘째 때는 운동을 계속하리라, 마음 먹었다.
임산부 운동에서는 마주쳐야 할 큰 산이 2개가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는 '임산부=안정'이라는 공식이 너무 세서인지 임산부에게 많이 잘 먹고, 가만히 앉아 혹은 누워있을 것을 은근히 강요한다. 임신했다고해서 평소에 자제하던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먹었다한들 반드시 운동이 수반되어야 한다.(안하면 다 내 살이 돼..) 과한 체중증가는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이런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대병원 전종관 교수가 유퀴즈온더블록에 나와 이야기한 것처럼 임산부에게 안정은 독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2주만 안정을 취해도 근육이 다 빠진다'. 2주만해도 그럴진데 280일 내내 안정을 취하면 산모의 체력은요?
두번째는, 임산부 운동에 대한, 특히 임신 중 달리기에 대한 한국어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임신 중 달리기', '임산부 달리기' 등을 검색해서 나온 정보는 정말 제한적이었다. 이전에 달리기 경험이 있는 임산부라면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 임산부에게 좋은 달리기는 어떤 건지 정말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정보가 정말 없었다. 그만큼 달리기뿐만 아니라 임산부 운동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개중에는 꿀 같은 정보가 있었는데 대개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임신 전 운동을 하던 사람은 계속 해도 좋다. (임신했다고 갑자기 운동하지는 말자) (2) 심박수는 분당 140 이하, 주변 사람과 대화 가능한 수준(전 분당 150에도 수다런이 가능한 사람입니다!) (3) 임신과 관련된 질병 - 출혈, 조기진통, 양막파열, 전치태반 등 - 이 있다면 운동은 무리다!
"달리기가 태아의 조산과 저체중과 연관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헬스조선, 2018.04.09)
"유산소 운동에 익숙한 여성에게 임신 중 규칙적인 에어로빅이나 가벼운 달리기(빠른 걸음으로 걷기)는 자연유산의 빈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진통기간을 단축시키고 제왕절개의 빈도를 낮춤, 양수 내 태변 착색과 태아 절박가사를 줄인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아이투비산부인과 홈페이지, 2021.11.03)
"임신 전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오던 임산부의 경우에는 임신 중에도 달리기를 해도 좋다. 건강한 여성의 경우 일주일에 3~4일, 하루에 15~30분 운동하여 주 150분 이상 운동을 실시하는 것이 좋으며 운동 중 대화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로 실시한다."(국민건강지식센터 "임산부를 위한 운동 가이드라인")
심지어 나는 외국의 기사와 문헌까지 찾아봤는데 ㅋㅋㅋ 외국도 인식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너스월드 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여성이 임신 중 달리기를 중단하고, 그 이유로 불안, 초조함, 유산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고 한다(2022). 지속적인 오해로 임신 중 신체활동을 지속하는 여성은 3~15%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러너스월드는 이를 반박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에 반대되는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But for non-complicated pregnancies the key message is simply, ‘don't bump, the bump’. 합병증이 없는 임신의 경우 핵심 메시지는 단순히 '충돌하지 마세요, 부딪히지 마세요'입니다.
In terms of intensity, the rule of thumb is to stay below 90% of maximal heart rate, meaning a speed session is still possible with plenty of fluid. 강도 면에서 경험 법칙은 최대 심박수의 90% 미만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 상태에서 스피드 세션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의미. (참고로, 가민이나 순토 등 GPS시계를 차고 달리는 경우 케이던스와 최대 심박을 확인할 수 있고, 평소 자기 최대 심박을 잘 아는 러너가 임신 중 달리기를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외국의 다른 문헌들도 결론은 똑같았다. "임신 중 달리기, 무리하지 않으면 문제 없다". 오히려 외국의 기사들은 임신 중 달리기를 권장했다. 나 또한 임신한 몸으로 쌩쌩 전력질주를 하고자 한 건 아니었다. 외국의 임산부들은 달리기가 권장되는데, 한국의 임산부들에게는 금기시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서양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여성의 몸은 다 똑같은 구조일텐데.
도저히 안되겠어서, 고민 끝에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께 여쭈어봤다.
선생님, 달리기가 하고 싶습니다(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말했다고 자부한다)
예?
달리기...할 수 있을까요... 하면 안될까요..(금방 쭈구리가 되었다. 안된다고 할까봐, 혼날까봐 무서웠다
아 예... 러닝머신에서 시속 6정도로만 뛰세요
오예! 일단 허락받았다! 하지만 계산해보니 러닝머신에서의 시속 6은 6분 페이스가 아니라 1시간에 6km 가는 정도였다. 페이스를 계산해보면 거의 9분 30초?
선생님 저는 빨리 걷기만 해도 9:30이 나오는데요 ㅠㅠ
그렇게 내 맘속 페이스는 8:30으로 정하고 임신 12주를 넘긴, 13주가 되자 달리기에 돌입했다.
임신 중 달리기도 실력이 향상된다(?) 한 주전에 1주에 두 번 뛰었더니 자꾸 올라가는 페이스....! 8:30페이스는 도저히 안나올 것 같고(?) 진짜 7:30은 맞추자며 뛴 달리기.
심지어 TR(training run, 크루원들끼리 같이 뛰는 것을 의미함)도 나가 친구들 얼굴도 보며 노들섬도 구경하며 걷뛰걷뛰. 이 날은 배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은 듯하여 뛰다가 바로 멈추고 걸었다. 아무리 달리기가 좋아도 꿈제가 우선이지요 암. 저 평안한 심박수를 보라..!
1km는 친구들과 같이 걷고, 4km는 뛰었다. 뛰다가 너무나 내적으로 신나고 행복한 나머지 페이스가 6:15까지 올라가며 이건 진짜 안돼!하며 겨우 낮춤. 뛰던 가락이 있어서인지 속도를 늦추기가 더 힘들었다. 왜 배우자 친구가 빨리 뛰는 것보다 느리게 뛰는 게 더 힘들다고 하는지 아주 쪼오끔 이해했다. (그래도 빨리 뛰는 게 더 힘들걸?)
원하던 임신을 하고, 배를 쓰다듬으며 "꿈제야 달리기 재밌지" 말을 걸며, 딸과 함께 달리는 순간. 그런 순간순간마다 나를 스쳐가는 아름드리 나무의 초록, 빨리 찾아온 더위가 느껴지는 뺨, 소란스러웠다가 잠잠해지는 공기, 그에 대비된 가빠진 호흡, 일정한 보폭을 내딛는 내 두 다리.
정말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는 걸 어찌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달리기를 하며 맞닥뜨리는, 정말 정말 사랑하는 순간을 뱃 속 아기도 오롯이 느끼고 있으리라. 그래 이게 태교지! 이게 태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