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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Feb 28. 2023

내가 아닌 남을 진심으로 응원해본 적 있나요

달리기 대회에서의 응원은 사람을 향한다


  2017년 중마(현 JTBC마라톤) 풀코스를 응원하러 가기로 하고, 내가 배정된 지점은 25km 즈음의 반환점이었다. (지금은 코스가 바뀌었지만) 중마 코스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재미없기로 소문났었는데, 수서를 지나 모란역 근처 탄천까지 계속 이어지는 코스가 악명이 높았다. 평지에 아스팔트길로 뛰기는 좋았지만,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 볼 것도, 목표로 삼을만한 건물도 - 그런 코스였다. 주자들은 그 재미 없는 길을 계속 뛰다가 반환해서 다시 그 길을 돌아 서울로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배정된 지점이 바로 그 반환점이었다. '지루하다', '재미없다'는 식의 말을 정말 많이 들었기에 응원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거의 2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그 지점에 도착했을 때도 그닥 감흥이 없었다. 


  돗자리를 펴고, 음료를 준비하고, 종이컵을 준비하고 뭔가를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가 약간 들뜨기 시작했다. 말을 들어보니, 엘리트 선수들이 곧 온다고 했다. 네? 1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요? 그들은 풀코스를 2시간 10분 내외로 뛰는 사람들이니 25km 지점이라면 1시간 지나서 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 말을 떼자마자 멀리 지평선부터 고요했던 일직선의 길이 웅성웅성 대기 시작했다. 케냐 출신의 엘리트 선수들의 발놀림은 정말 크고, 바빴고, 또 빨랐다. 뛰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왔다. 그들은 정말(말도 안되게) 빨랐고, 그 속도만큼 빠르게 감동이 밀려왔다. 그 뒤부터는 응원을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레몬! 콜라! 있습니다!!!" 친구들이 지나가면 더 환호했고,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도 힘내세요! 화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모든 마라톤이 끝나고 뒤풀이에 가서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먹었다. 내가 뛴 것도 아닌데. 여운이 쉽게 안 가셔 계속 이어진 술자리였다.


"마라톤 풀코스 뛰는 사람들의 느낌은 어떨까?" 

"(어떠긴 어때 더럽게 힘들지) 어떨 것 같아?"

"...."

"그럼 내년 동마 뛰자!!"


그로부터 4개월 뒤, 나는 2018년 동아마라톤 풀코스 출발 지점에 서있었다. 




  그 뒤로 많은 대회를 나가 많은 응원을 하고, 또 받았다. 18년 춘천마라톤 때는 서울에서 출발한 새벽 6시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그 비가 춘천까지 따라왔다. 결국 그 날은 마라톤 시작부터 끝까지 비를 맞고 뛰었는데, 그런 궂은 날씨에도 내가 언제 올지 몰라 결승점에서 하염없이 날 기다렸던 숙달언니와 진달 씨가 있었다. 그녀들은 내가 신은 주황색 러닝화를 혹여나 놓칠까봐 시람들의 신발만 보며 우산을 쓰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그녀들이 빗 속에서 2시간 넘게 날 기다렸음을 알았을 때 나는 웃을 수 없는 얼굴로 웃어야만 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찌릿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날의 비를 생각했다. 그 비를 다 맞고 뛴 나와, 나의 주황색 러닝화만 기다린 그녀들의 마음이 뒤엉켜 마음 속에도 비가 내렸다. 그렇게 비를 흘려보내면 한결 나아진 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친구들을 울린 적도 있다. 22년 춘마는 코로나19 이후 열린 첫 대회이자, 출산 이후 나간 첫번째 풀코스 대회였다. 이미 복직한터라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려웠기에, 거의 3개월간의 토요일 아침을 아기까지 데리고 가며 달리기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가 22년 춘마였다. 그 거의 모든 훈련을 함께 한 친구들이 멀리 춘천까지 와서 응원을 해주었다. 하프 지점인 신매대교가 나타나기 1km 전부터 나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리며 뛰었고(주자도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뛴답니다), 그들을 만나 정말 반가운 마음에 내내 웃으며 신매대교를 떠났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내가 그렇게 뛰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 현달이, 은달이, 그리고 상달이까지 -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여름 내내 동거동락하며 내가 알게 모르게 애쓰고 있다는 걸, 친구들은 어렴풋이 알았던 모양이다. 그 눈물이 정말 사무치게 고마워서 지금까지 고맙단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 대회. 32.195km를 뛰고 난 뒤, 목소리만으로도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해사함 그 자체 내 친구 달다래가 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골인 지점에 다다르러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들어오는 나의 모습이었다. 웃으며 뛰어오는 내 모습보다, 나를 발견하며 폴짝 폴짝 뛰는 달미와, 14초 영상에서 화이팅을 세번이나 외쳐 주는 달다래의 목소리가 너무나 좋아서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보았다. 난 뛰니까 춥지라도 않지 본인들은 3시간 넘는 시간을 밖에서 주자들만 기다렸으면서. 그 노력과 마음을 알기에 그 영상 속 목소리가 여전히 밝은 것에, 강인한 것에, 확신에 차있는 것에, 그리고 큰 것이 아주 많이 좋았다. 그 여운이 하루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결국 응원에 대한 글을 쓰고 만 것이다. 


“뭘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응원 자체가 즐거워서 해. 너무 재밌게 했어”

  

유명한 power up 짤이 마라톤에서 나온 이유


    

 달리기 대회에서 응원은 오직 '사람'을 향한다.


  달리기 대회에서 대결 상대을 꼽으라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 그만 뛰고 걷고 싶은 내 자신 뿐이다. 야구나 축구처럼 점수가 드러나지도 않고, 누군가와 대결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달리기 대회에서의 응원은 더욱 특별하다. 내 친구, 가족, 선후배를 응원하러 갔다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절로 '힘내세요', '화이팅'이라는 말이 터져나오곤 한다. 그 화이팅을 받은 사람들 열에 아홉은 몹시 힘들어보여도 웃어보이거나 손을 들어 감사를 표한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온 몸 그득히 인류애를 느끼며 터져나오는 눈시울을 참으려 애쓴다. 그 어떤 책, 다큐, TV 등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동지애, 연대감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인류애가 주로에 있다. 달리기 대회에서의 응원은, 그런 맛이다. 


그 맛이 좋아 내일 또 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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