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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Feb 24. 2023

순수한 연습

반짝이는 두 눈으로 계속 순수하게 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2월은 정말 바빴다. 배우자 근처 회사로 아예 동네를 드디어 이사를 했다. 아기가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니 2주의 안식휴가를 일찌감치 신청해놓은 상태였다. 어느새 회사에 다닌지 5년이 넘어 나오는 안식휴가를 보니, 흘러간 시간을 새삼 실감했다. 회사를 가지 않으면서 이사를 마치고, 아기는 어린이집에, 나는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정신 없는 와중에, 게다가 워킹맘 주제에(!) 2023년 3월 19일에 열리는 서울국제마라톤 (aka 동마)풀코스에 신청을 했기에 달리기에도 매진해야 했다. 


  사실 이번 동마는 그렇게 의욕도 열정도 없었다. 동마 소식이 처음 들린건 22년 12월이었다. 춘마를 끝낸지 두달 정도 지나 봄날에 열리는 풀코스를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꽤 있었다. 나를 망설이게 한 것은 10만원이나 되는 참가비였다. 분명 18년도만 해도 5만원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열린 걸 만회하려는 것인지 5년 사이 100%나 올라버린 참가비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바람막이도 주고, 티셔츠도 준다지만 풀코스 나가는 러너라면 집에 바람막이와 티셔츠는 차고 넘칠 것이고, 무엇보다 10만원이라는 참가비를 받기 위한, 마라톤은 그저 명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최 의도가 전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은 마라톤 대회였다. 세계 6대 마라톤이니, 국내 유일 플레티넘 대회라니와 같은 미사여구가 더욱 동마에 나가기를 꺼리게 만들었다. 


  그러던 내가, 동마에 나가볼까? 생각을 한 건 1월 초 연습으로 15km를 뛰면서였다. 오랜만에 느린 속도로 반포종합운동장 트랙을 돌며 친구들과 함께 발맞춰 15km를 뛰고 나니 제법 기분이 좋았다. 결국 또, 집에 가는 길에 '그래 이 맛에 장거리 뛰지'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동마 참가신청 버튼에 내 마우스 포인터가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절레절레.. 달리기란. 마침 1월 중순부터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글쓰기 약속 알림'을 앱을 통해 받을 수 있는데, 주 2회 수, 토에 이런 알람이 내게 오도록 했다.


어제 혹은 오늘 달렸니? 2023.01.18


어제 혹은 오늘 달렸니? 러너로서 브런치 작가로서 나 스스로에게 묻는 정체성


  어느 날은 이 알람을 달리자마자 받기도 했고, 어느 날은 어제 많이 달린 나 자신을 뿌듯해하며 받았다. 이 알람을 설정한 이후, 어제 혹은 오늘 안 달린 날은 없었다. 마라톤 풀코스 대비 연습이란 건 그런 것이니까.


  흔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100km는 기본으로, 원하는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150km 이상의 연습량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반 안에 안전하게 들어오고 싶다면, 1km를 평균 6:00~6:15 사이로 계속 꾸준히 뛰어야 한다.(30km 이상가면 힘들어서 5~10초씩 밀리는 걸 감안하면 더 이상 느려지면 안된다.) 즉, 10km에 1시간 정도를 소요하는 셈이다. 이를 환산하면, 한 달에 100km는 10시간, 150km는 15시간을 달리기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그렇게 많은 시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인들에게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뛰어야 하는 게 마라톤 풀코스의 시간이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큰 깨달음을 얻는 표정을 짓는 것처럼, 10시간이라면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서울-부산 왕복 KTX를 연속해서 4번 타는 시간이고, 15시간이라면 KTX를 연속으로 6번 타는 시간이니, 결코 적지 않다. 


  그렇게 2월 1일부터 24일까지 110km 정도를 뛰었다. 사실 러너 사이에서 보면 많은 훈련량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사를 하면서, 일하면서, 아기를 돌보면서 틈틈히 만들어낸 훈련의 기록이라 많이 뿌듯하다. 이번주 일요일에 챌린지 레이스 대회의 32km 코스에 참여할 예정이니, 앞뒤로 조깅을 하면 말일까지 150km+@을 채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작년 춘마도 이렇게까지 연습하지 못했고, 한 달에 150km를 뛰는 일은 20년 5월 이후 처음이니, 거의 3년 만의 일인것이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반짝이는 두 눈으로 계속 순수하게 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이 있음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에게도 아직 순수함이 남아 있다. 나는 순수한 사람이다.


반짝이는 두 눈으로 계속 순수하게 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달리기는, 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에 도움이 된다. 아주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그리고 또, 달리기는 연습한 만큼 실력이 향상된다는 면에서 정말 지극히 순수한 운동이다. 주말에는 대개 평일에 하지 못한 장거리 훈련(15km 이상)을 하는데, 1월 초에는 15km가 한계였다면 2월 중순에는 기어코 한 번에 30km 정도는 뛸 수 있는 몸을 만든다. 이 쯤 되면 조깅을 할 때도 '오늘은 가볍게 10km를 뛰어야지' 정도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10km 조깅을 매일 할 수는 없어도, 10km가 비교적 부담 없는 거리가 되는 것이다. 공원이든, 트랙이든, 거리의 아스팔트든 계속 달리기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나는 달리기를 더더욱 '순수한 연습'이라 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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