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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Apr 16. 2018

<브이 포 벤데타>와 무정부주의

신념으로 인간은








신념이 두려움을 이길 때 인간은 자유해진다. 그 자유는 인간을 영원으로 이끈다.

죽음이 관통하는 것은 한 인간의 몸이지,

신념이 아니다.

사람은 신념으로 남아 영생한다.

 


주인공 이비 해몬드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누르며 살아간다. 부모의 억울한 죽음에 이어 남동생마저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한 감정마저 표현 못한 채 살아간다. 이비는 죽음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 껍데기인 몸만 가지고, 자신을 속이며, 슬픔과 분노를 묻고 살아간다. 그때, ‘브이(V)’가 나타나 억눌린 채 가라앉아 있던 그녀의 내면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이비는 모든 감정을 내리눌러 얻은 안정에 기대어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와 감정을 의심한다. 그러던 중에, 역설적으로, 브이의 고문 때문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비의 신념이 마침내 죽음의 공포를 이겼을 때, 이비는 자신을 가두던 두려움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브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브이(V)는 독재 정권이 자행한 생체 실험의 희생자였다. 브이의 몸은 화상으로 문드러졌지만, 그의 신념은 티끌만큼도 상하지 않았다. 두려움 없는 그의 신념이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고, 이비를 가두었던 신념 없는 몸까지 불태워버렸다. 이비의 영혼이 죽은 것과 다름없던 몸을 깨고 나오게 했다. 이비 헤몬드, 경감과 시민 모두 브이처럼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고, 브이가 걸어간 자유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은 사람들 아니었을까?


영화가 그린 미래의 독재 사회가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할까? 난 워쇼스키 자매가 <브이 포 벤데타>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이렇게 이해했다.


이비처럼, 경관처럼, 그리고 그 사회의 무수한 시민처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는 숨죽이지 말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나 세상을 바꾸라고!
그 세상에서 우리 모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권력독점의 상징인 영국 의회 건물이 브이의 죽은 몸과 함께 폭파하는 장면에서, 나는 두려움을 이긴 자유의 힘을 느꼈다. 난 이 장면에서 한 인간이 얻은 자유의 힘이 억압의 상징인 의회(무정부주의자는 의회를 지배의 상징으로 이해함)와 우리의 자유를 가두었던 '두려움의 감옥'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였다. 브이가 보여 준 자유는 권력의 독점을 보란 듯이 해체했다. 이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한 연출이라기보단, 두려움을 이긴 자유의 폭발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불의한 권력(중앙 집권적 정부; 과두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한 정부 형태)에 맞서는 시민 집단(Anarchist; 지역 자치 주의자)이 추앙하는 영화가 되었다. 불편하지만 현재의 제도가 주는 편안함을 떨치고 나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라고 초대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브이 포 벤데타>는 거짓 자유를 깨고 나와 진정한 자유의 길로 나오라고 초대하는 몇 안 되는 영화 중의 하나다.




무정부주의와 '혼란'


1840년까지는 ‘무정부주의자’(anarchist)란 표현을 진정한 민주주의자를 경멸하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아나키’(arnachy)는 고대 그리스어 ‘아나키아’란 어원을 가진다. ‘아나키’(arnachi)는 ‘권위에 반대하는 혹은 지배자가 없는’을 의미한다(Ward 2004, 1-3). 무정부주의하면 ‘혼란과 무질서’를 연상할 수 있다. 당대의 기득권 집단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지역 자치 주의자(혹은 지역 연방주의자)에게 ‘무정부주의자’라는 부정적인 이름을 붙였던 거다. 이런 ‘낙인찍기’(labelling)는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반대파를 무력화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무정부주의는 말 그대로 정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독점한 권력을 지역에 나누고, 지역 시민이 그 지역 의회에 평등하게 참여케 하는 제도다.




지역 자치주의(무정부주의)는 왜 생겨났을까?


프랑스혁명 이후에 시민 권력이 등장했음에도, 그 권력이 한때 동료였던 시민 다수를 감시하고 처형하는 것을 다수가 목격했다. 권력 남용을 지켜본 의식 있는 시민(지역 자치 주의자가 될)은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왕과 귀족이 차지하던 자리의 주인만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정부주의자는 소수가 독점한 권력의 속성을 목격하고, 권력을 시민과 공유케 하는 제도를 연구하고 도입하려 했던 지역 자치 주의자들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


지역 자치 주의자(아나키스트)가 역사상 가장 민주주의를 사랑한 이들이다. 민주주의는 소수가 독점한 권력을 시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나누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지역 자치주의 사상가로 푸르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쏘로우가 있다. 간디와 루터 킹 목사도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Ward 2004, 64-5). 살아있는 지역 자치 주의자(지역 연방주의자)로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대표적이다. 스위스가 이들이 추구했던 지역 자치주의를 모범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나라다. 여러 캔톤(주)은 지역 자치를 시행하고 연방의회는 행정적인 기능만을 가진다. 스위스는 ‘시민 입법’과 ‘시민이 주도하는 국민 투표’와 같은 제도로 시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한다.




우리도 이비처럼 위장된 가짜 자유 민주주의에서 거짓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가 행정, 입법, 사법부가 가진 권한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게 한다. 행정부는 시민 모두가 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독점한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3백 명은 공동체의 규칙인 법률을 만들 권한을 독점한다. 사법부는 어떤가? 판사 3천 여명이 국회의원 3백 명이 만든 법 해석 권한을 독점한다. 이렇게 소수가 권력을 독점케 하는 정치 제도를 삼권 분립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민주주의로 위장시켰다(Miller 2003, 41). 평범한 시민인 난 공동체의 규칙인 법률을 스스로 만들 수 없고, 내가 낸 세금의 사용 방식에도 일절 발언권이 없다. 공동체의 규칙인 법률의 위반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이 사회의 주인이라고 하는 우리에게는 없다. 시민에게 주권 즉, 결정권이 있다고 하지만, 우린 선거로 이러한 핵심적인 결정권을 지배 계층인 소수 정치인에게 위임한다. 그 결과로 시민에게서 주권을 위임받은 소수 엘리트가 내린 결정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역설적으로 주권자인 우리가 우리 권력을 위임한 그들의 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급기야 우리는 공동체의 모든 문제를 삼권을 장악한 소수 지배계급에 맡기는 삶에 익숙해졌다. 언제부터인지 내 맘 같이 돌아가지 않는 사회에서 어딘지 모를 부자연스러움과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것에도 우린 익숙해졌다. 늘 그랬듯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결정을 남에게 맡겨 왔으니까. <브이 포 벤데타>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서, 그리고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유가 없는 현 상황에서 떨쳐 일어나 주인답게 결정권을 되찾아 행사하라고 외친다(Freeden 2003, 111-2). 워쇼스키 자매는 이 영화에 브이와 이비의 이 쩌렁쩌렁한 외침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Bibliography     

Freeden, M. (2003), ‘Ideology’,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Miller, D. (2003), ‘Political philosophy’,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Ward, C. (2004), ‘Anarch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영화 스틸 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음을 알립니다.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1156#59059/Photo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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