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계약의 역사] 8편: 관계의 균열

변화: 협의를 잃고 절차만 남은계약

by 조민우

2000년대 이후, 공공계약 시스템은 나라장터라는 투명한 플랫폼과 국제 표준이라는 견고한 원칙 아래 꾸준히 안정화되었습니다. 공공계약이 예측 가능한 절차와 합리적인 규칙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처럼 보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견고한 시스템에 전례 없는 균열을 일으키며 공공계약의 본질적 가치를 흔들었습니다.


마스크와 진단 키트와 같은 필수 물품의 공급망이 무너지고, 건설 자재와 원자재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는 혼란 속에서, 공공계약은 기존의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직면했습니다. 과거라면 유연한 협의를 통해 해결했을 문제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서는 엄격한 법적 원칙과 절차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경직된 구조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기관은 계약의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더욱 세밀한 조항들을 추가했고, 기업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약서의 작은 문구 하나까지 따지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상황이 안정된 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어, 계약의 유연성은 줄어들고 소송민원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과거의 공공계약이 '상호 간의 이익을 위한 협력'을 기반으로 했다면, 이제는 '상대방의 실수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 새로운 관행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공공계약이 단순히 법과 제도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기술과 규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신뢰와 관계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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