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산 올 때 도천댁 우리 엄마는 나 없이 혼자 살기 외롭다며 나를 따라 부산으로 왔다.
그때 집을 팔았으니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닌 지 50년이 됐다.
그런데 갑자기 거기를 가자니!
뜬금없다 생각했지만, 생각하니 가보고 싶었다.
어릴 때 놀던 마당이 그대로인지, 마당에 살구나무가 아직 있는지, 나무꾼들이 물 달라는 핑계로 나를 보러 왔던 우물도 그 자리를 지키는지 궁금했다.
오래전 우리 집이 허물어져 밭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 머릿속 우리 집은 예전 그대로였다.
기억을 떠올리니 그리움이 더해졌다.
난 딸과 사위에게 쓸데없다 말하며 못 이기는 척 나의 살던 고향 집으로 향했다.
예전에 다닌 골목길은 소가 다니고, 차도 오갈 만큼 넓었었는데, 지금은 차 한 대 지나기 어려울 만큼 좁았다.
좁은 길을 간신히 운전해 어릴 적 동네를 마주 했다.
고향을 떠난 후 동네잔치가 있으면 가끔 오긴 했지만, 내가 살던 집을 찾아온 건 몇십 년 만이다.
그런데 마을에서 방이 제일 컸던 우리 집은 없었다. 마당에 있던 맑고 시원한 우물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은 그곳에 방이 있었는지, 우물이 있었는지, 우리 엄마가 갈던 밭이 있었는지 상상되지 않을 만큼 작았다.
아무도 살지 않지만, 옆집 순이 집은 세월을 머금은 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 방 창문과 맞닿아 있던 순이 방 창문도 있었다. 같이 놀다 헤어져도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창문에 붙어 또 이야기를 나누던 어릴 적 순이 모습이 보였다. 그 덕분에 우리 집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오갔던 집 주변 산, 밤새 뛰어놀던 골목길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의 시원한 공기와 흙냄새가 느껴졌다.
18살 어린 소녀가 아닌 77세의 늙은 내가 서 있지만, 저 너머 18세 순이가 있었다.
그리고 허리 숙여 밭을 매던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더 놀다 배고프면 온나. 엄마가 된장 끓여 놓을 꾸마.”
엄마는 일 많이 하면 일 많은 집 시집간다고 늘 나에게 놀라고만 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혼자 4남매를 힘들게 키운 엄마를 도와주지 않았던 철없는 나도 보였다.
보고 싶은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웃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서 있으니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때 내 나이의 손자가 묻는다.
"할머니, 옛날 집 오니 좋아요?"
"응. 좋다. 좋네."
엄마는 고향 집에 한참을 서 있었다. 집터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잡풀이 무성한 공터였지만, 엄마는 그곳에서도 우물, 밭, 넓은 방과 부엌을 찾았다. 엄마의 기억이 엄마만의 것인 게 못내 아쉽지만, 엄마의 눈에서 50년 전 순이를 잠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