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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Jul 11. 2024

14. 에필로그

모든 인생은 제대로만 된다면 하나의 소설이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했지만

들은 게 없었고

엄마의 일생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는 게 없었다.




자라면서 들었던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일생은 그저 그랬다.

늘 똑같은 이야기를 푸념하듯 내뱉고, 늘 똑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모든 상황들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엄마가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옛이야기, 아빠에 대한 원망, 이웃집 아주머니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고, 들어도 머리에 남지 않았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삶에 대한 지혜, 내가 고민하는 인생에 대한 지침, 다른 집에는 다 있을 것 같은 우리 집만의 가훈 같은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엄마는 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는 그게 싫었다.

     

게다가 한창 공부해야 할 학창 시절, 우리 집은 매일 부모님의 전쟁터였다. 

그 속에서 난 귀를 막고 공부하며, 언젠가 구질구질한 이런 삶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운동선수로 맷집이 좋았던 여동생은 엄마를 대신해 아빠에게 달려들었고, 소심한 남동생은 책상 밑에 숨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전쟁을 견디며 살았다. 

생각이 짧았던 그때, 난 세상의 불행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나를 불쌍해했다.  

당시는 힘든 엄마의 인생, 과거에 머문 엄마를 이해하기에 너무 철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돌보던 엄마가 없어졌다. 당시 너무 젊었던 엄마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부정했고, 아빠는 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엄마의 한쪽 팔다리를 잃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패배했다.   


이렇듯 엄마의 인생은 우울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커다란 벽이 되어 막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날, 나는 처음 엄마를 가로막고 있던 그 벽을 보았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이 삶을 이어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야심 차게 엄마의 인생을 글로 적겠다고 생각하며 피를 토하듯 쏟아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평생 들은 엄마의 이야기는 건성으로 들은 탓에 빈약했고, 빈약한 이야기조차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엄마 이야기를 써나간 몇 개월 동안 나는 오롯이 엄마를 느끼며 엄마의 인생을 대신 살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했던 엄마의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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