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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Jun 16. 2024

내 '손'이 먹여 살릴 사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는데 20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 집은 천주교이지만 사주 보는 걸 좋아했다. 

내가 직접 사주를 보러 간 건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 후의 일이지만 그동안 여러 번의 내 사주 결과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매번 좋은 결과가 나왔고, 큰 기대주, 유망주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했다. 

 

사주대로 살아간다는 법은 없지만 답답하고 막막한 순간에 맞닥뜨릴 때면 이 시련은 곧 지나가고, 나에게 진짜 빛을 볼 날이 오겠지 하며 위안이 되기도 했던 나의 사주.  

그 내용인 즉 타고난 재능이 많은데, 그중 손재주가 좋아서 그게 곧 나와 주변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 실제로 나는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특히 좋아하고 곧 잘했다. 그렇게 나는 기대 속에 자라오면서 스스로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못하는 게 없는 아이가 되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말이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실패에 부러지고 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다시 하면 되지!’라며 남들에게는 쿨하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슬퍼하고 속상해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공부와 미술 실기를 하던 학창 시절을 지나 재수를 해서 대학에서도 제품디자인을 전공하고, 그 이후에도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손으로 만드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힘든 순간이 생기면 ‘이건 역시 내가 할 일이 아니야’ 하며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어떤 일을 하든 힘든 순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현실을 부정하고, 현재에 충실하려는 마음이 없어져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몇 번 그런 감정을 마주하다 보니 ‘아, 이건 현실 회피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현실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시간 동안 놓친 것 중에 스스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무언가에 몰두하고 깊이를 만들어가는 것. 두 발에 힘 꽉 주고 단단하게 서서 무언가를 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은 사실은 ‘내 손이 나를 먹여 살릴 사주’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에는 물론 곧 잘 만들어내는 손재주도 있겠지만, ‘주체적으로 내 삶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도 담겨있다는 것. 꽤 오래전부터 그랬다.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하고, 궁금하면 직접 해보려는 성격. 그 성격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 삶 일부에만 등장했을 뿐, 내 인생 전체를 끌어가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이것 또한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느끼는 아쉬운 점이라는 것은 몇 번을 곱씹어보아도 맞는 생각이었다. 


새로운 마음을 먹고도 아직 갈길이 멀다. 직접 밟아보고 다듬어가야 할 길이 끝없이 길게 느껴질 때 나는 그 막막함을 기대감과 성취감으로 바꿔줄 방법을 스스로 찾고 있다. 가깝고 쉬운 목표를 자주 두는 것. 길고 긴 길에 단 하나의 목표를 두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용기는 쉽게 나지 않으며 좌절하기 쉬워진다. 무엇보다 그 목표가 흐려지면서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자꾸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이어리와 캘린더 '투두 리스트'에 화분에 물 주고 젤리 산책시키는 일까지 메모해 두고 하나씩 지우고 있다. 너무 일상적이고 사소해서 리스트에 적는 것도 괜히 혼자 민망해했는데 그 작은 것들이 모여 내 삶의 루틴을 만들어주고 있었고, 나와 가장 가까운 주변부터 돌보고 다듬어가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물 많이 마시기, 아침 스트레칭과 식사하는 것, 오전과 오후 일과를 나누어하는 것, 리스트에서 지우지 못한 일은 꼭 며칠 안에 해내는 것 등 더 세밀하게 살아보려 하고 있다. 그중 이 글쓰기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제 막 시작한 나의 새로운 ‘Shell, we’도 하나의 큰 카테고리를 만들어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내 시선과 손을 거쳐 남기는 기록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따라오는 고민이 있는데 그 고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법도 배우는 중이다. 이제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고, 내가 회피하면 내일, 그다음 날의 내가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비주얼, 마케팅에 도달하기 전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고 나의 일부를 브랜드로 만드는 단계를 지나는 중 인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더 확신하는 것은 나는 정말 직접 만져보고, 만들어보면서 큰 기쁨을 느끼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공감할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오늘도 부지런히 만들 것을 생각하고 메모하고 또 그려본다. 그리고 그 작은 결과물을 손에 쥐었을 때 얻을 기쁨을 생각하며 스스로 용기를 북돋아준다. 


오늘 이 이 글을 발행하고 나서 만들거리에 대한 기대감이 지금 나를 설레게 만든다. 이런 작은 기쁨이 여러 번의 ‘해냈다!’를 만들어 따뜻한 브랜드를 만들 때까지 단단하게 서 있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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