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선명해지는 나의 취향을 일로 이끌어보자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어떤 이상향 같은 분야가 있다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을 '내 공간을 가지는 것'. 나의 경우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을 상상한다.
사실 몇 년 전 공간 운영을 도전해 본 적이 있지만 결론은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로 마쳤다.
돌이켜보니 무엇으로 그 공간을 운영할 것인지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리소스는 나 자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한 명인데 외주작업과 전시참여, 클래스 운영, 온라인 숍 운영, 가끔 참여하는 플리마켓 등 N가지의 분산된 활동이 많았고, 주력으로 한 가지를 정해 밀고 나가는 일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름으로 뛰어든 여러 활동이었지만 하다 보니 금방 지쳐 '여긴 뭘 하는 공간이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점점 공간에 대한 애착도 떨어졌다.
다행인 것은 그 사이에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분야, 일 하고 싶은 방식이 더 명확해진 것.
아픈 손가락 같은 그 시기를 지내고 지금까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간 운영'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지는 나의 경험치에 따라 점점 더 세밀해지는 것 같다.
그중 변함없이 리스트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먹고 마시는 것.
꽤 오래전부터 요리와 베이킹, 음료와 커피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비싼 재료를 골라 전문가 뺨치는 맛을 내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스스로 그저 취미의 하나로 생각해 왔다. 언젠간 전문적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돈을 벌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그 취미는 점점 더 깊어졌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된 문화에는 디테일한 취향에 대한 옵션이 생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딱 그 말처럼 요리 스킬이 늘어가면서 디테일한 취향이 생겼다. 기분과 분위기,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재료와 요리법이 달라졌고, 마실 것도 페어링과 어떤 잔에 마실 것인지, 온도는 어떻게 할지 등 세심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새로운 브랜드 몇 군데는 공간에 직접 찾아가거나 꾸준히 제품을 구매하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는 중이다.
이후 일로 만나는 브랜드 중 F&B 브랜드와 관련 협업을 할 때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 점점 더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갔고, 전문적 이면서 친근하고, 우리 삶과 참 밀접한 부분이 많은 분야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바로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 새로운 문화에 대한 경험과 수용, 그리고 이를 통해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고 들어도 혀끝에 닿기 전까지는 모르는 그 세계. 즉각적인 즐거움과 음미하며 깊어지는 행복함.
나에게 먹고 마시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브랜드가 생겨날 즈음부터 꾸준히 애정으로 팔로우하던 브랜드에서 일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크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브랜드에서 올린 소식을 보고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 고민할 여지없이 '이것은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서류를 작성했다. 사실 오랜 애정이 담긴 브랜드라 혹시나 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까 봐, 나의 이력이 너무 동떨어져 보일까 봐 아주 잠시 멈칫했던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채용공고와 추구하는 메시지를 보니 어쩌면 내가 더 행복하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몇 날 고민하며 만든 서류를 제출하면서 스스로 마인드컨트롤 하며 애써 덤덤한 척하며 지냈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 기회가 생겨 한 시간가량 면접을 하고 나니 새어 나오는 간절함은 어찌 막을 수 없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감사하게도 함께할 기회가 생겼고, 꿈꾸던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는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모든 것은 계단처럼 성장한다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꾸준히 지향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는 것. 참 가혹하지만 맞는 말이다. 이렇게 깨달음을 다시 복기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지금처럼 바라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일 테지만 또 언젠간 찾아올 어둡고 막막한 시간에 잊지 말아야 할 진리이며 사랑하는 것들은 꾸준히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