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퀘스트에 탈락이란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단어와 제품, 직업이 생겨나는 요즘. 트렌드라는 것이 큰 역할을 하면서도 마치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후자가 더 가깝게 체감된다. 오늘은 가장 주목받지만 내일은 지난 유행이 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것들을 끊임없이 찾고, 혹은 그렇게 될 것들을 예상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을 얼마간 해오면서 나는 두 가지에서 회의감을 느꼈다.
그건 바로 휘발되는 메시지와 나 자신.
'주목받을만한'것을 만들어낼 때 가장 큰 모순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그다지 새롭지 않음과 정작 우리의 특색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찝찝한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대화하고 이미지를 모아보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 짜깁기로 만들어내는 듯한 결과물이 늘 아쉬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카피를 하거나 의미 없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거나 진심을 다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다만 어떻게든 우리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지만 그저 다음으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것, 포트폴리오에 한 장 채워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느낌에 마치 실연당하는 느낌처럼 공허함으로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는 했다.
지나고 나니 그 아쉬움은 나의 다음을 생각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그때의 공허함 속에는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캐릭터로 그 프로젝트를 이끌어간 사람이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휘발되는 메시지 속 나의 일부도 휘발되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매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마냥 신나지도, 마냥 막막하지도 않은 그 감정은 아마도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늘 '회사는 회사, 일은 일, 나는 나'라고 평정심을 찾으려 주문을 외워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나답게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일 답게 나를 맞춰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질문. 가끔 남편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ㅇㅇ는 너무 일할 때 자기 캐릭터가 강해" 라며 유독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언급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의 결론은 늘 흐지부지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잘못된 걸까?로 이어지는 질문에 서로 의견을 내다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라는 애매한 결론만 나올 뿐이다.
우리는 한때 무색무취의 사람일수록 오래간다고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무색무취의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거나 무작정 오래간다는 것이 좋은 건 아니라고 배운다. 이 변화의 핵심은 '너 자신을 알라'와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시대의 흐름이 어디로 얼마나 빨리 흐르건 우리는 진심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롱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렇게 꼭 맞는 일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한 일을 오래 하려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이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내 인생은 최종의 나를 향해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스무고개 하듯, 레벨업 해나가듯 퀘스트 가득한 과정이라고 느껴진다.
이 퀘스트에는 탈락은 없다. 다만 선택의 기회와 시간제한만 있을 뿐. 그러니 나는 더 자주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질문과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목표는 끊임없이 갱신될 것이고 모든 것은 그 과정 중 하나가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