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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May 04. 2024

2-7. 아카시아 꽃필 때가 딱 좋은 날

엄마는 버드나무밭 웅변 선생님

당산은 웃골로 오르는 길목에 있다. 소 먹이러 가는 아이들이 여름철 내내 모이는 중간 쉼터다.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집집마다 조무래기들이 누렁소 한두 마리씩 몰고 나오면 당산나무 아래 모인다. 오후 두 시 엔젤호가 삼천포 바다에서 하얀 점으로 떠오르면 누군가,


“엔저로다!!”


를 외친다. 여수로 가는 여객선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눈이 부시도록 하얀 날개옷을 펼치고 동네 앞바다에 떠오르면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놀던 아이들은 저마다 놀던 고누판을 접고 산으로 외줄기 길을 연다.

 

옆 마을 대송으로 넘어가는 뒷산 고갯마루로 오르면 소들은 제각기 알아서 고운 풀을 뜯고 아이들은 매일 같은 놀이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다. 바둑돌만한 작은 돌을 가져다가 다시 고누판을 펼치기도 하고 삘기 어린싹을 뽑아 뽀얗고 보드라운 속살로 심심한 입맛을 달래기도 한다. 풀대를 꺾어 여치집을 만들거나 매미를 잡아넣으며 곤충 채집 여름방학 숙제를 한다. 제법 나이가 든 아이들은 살림꾼처럼 산도라지를 캐고, 그러다가 개미 한 마리를 도라지꽃에 넣어 보라가 발그레하도록 각시방 꽃등을 밝히곤 했다.


버드나무밭

웃골은 아이들한테는 놀이터였고 어른들한테는 사계절 쉼 없는 일터다. 다랑논 옆으로는 버드나무가 두세 그루 섰다. 그 아래 크고 작은 바위를 감싸며 밭뙈기가 휘어지며 누웠다. 일명 버드나무밭이다. 참깨, 들깨, 메주콩을 심는다. 봄이면 풀을 메고, 가을이면 깨를 틀었다.


“아카시아꽃 필 때가 깨심을 적기니라.”


어른들 말씀이 그랬다. 봄이면 엄마는 버드나무밭에서 깨순을 옮기고 어린 나는 나뭇등걸을 타고 다니며 놀았다. 나뭇등걸은 일하다가 허리를 펴고 앉아서 쉬는 의자가 되고 어린 내가 촐랑거리며 폴짝거리는 뜀틀이 되기도 했다.


등걸에 올라서면 웃골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오른쪽으로 눈을 살짝 흘기면 마을을 굽어보는 수백 년 당산나무가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반대쪽으로 몸을 틀면 소오산과 큰설산 아래 들판이 완만하게 펼쳐진다. 그 사이로 돌돌돌 흐르는 냇물따라 얼룩배기 황소가 풀을 뜯고 뻐꾸기 노래 따라 밭매는 엄마는 시름을 달랜다.


사 학년 때 그 등걸은 내겐 무대였다. 유월이 되면 반공 웅변대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웅변이라 하면 박가네 남매가 매번 상을 휩쓸던 무렵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구색을 갖추기 위해 무대에 서고 웅변하는 시늉만 하던 상황이었다. 사 학년 여자 대표로는 반장이던 나더러 하라고 담임 선생님은 원고를 써서 주셨다. 웅변은 처음이고 어떻게 연습하고 실행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데도 말이다.


“열심히 연습하면 되는기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건 못난 짓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딸의 웅변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되셨다. 둥근 의자 같은 버드나무 등걸에 올라서 원고를 들고 목청을 뽑았다.


“해마다 유월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한반도 금수강산 방방곡곡에는....”


으로 시작하는 원고다.


“목소리가 작다!! 더 크게, 힘차게!!”

“힘을 빼고 또박또박 천천히!!”

“‘힘차게 외칩니다’는 두 손을 힘껏 펼쳐 올리면서!!”


엄마가 일하면서 듣고 있다가 가끔 던지는 지침대로 목소리를 높였다가 낮췄다가, 발을 쿵쿵거렸다가, 손을 가슴에 올렸다가 양손을 모두 펼치고 올렸다가를 연출했다. 엄마는 어디서 웅변 교육을 받았는지, 아니면 어디서 구경이나 했는지 궁금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우리 엄마가 학교 선생님보다 더 멋져 보였다. 그런 신뢰감으로 웃골 골짜기를 어린 목청으로 쩌렁쩌렁 울리게 했으니 버드나무밭 골짝 득음 과정이었다.


학교 웅변 무대는 중앙현관이 없는 교무실 앞이다. 가파른 층층 계단을 오르면 드높은 무대다. 운동장과 그 아래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 하는 웅변이지만 간이 크게도 담담하게 시작하고 자신감 있게 마무리했다. 고정 수상자이던 박 씨네 남매, 6학년 대선배까지 제치고 최우수상은 나한테로 왔다.


교내 대회나 군 관내 학예회를 수없이 다녔지만 그 웅변대회 만큼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대부분이 회화나 조소, 작문이었고 동화구연도 두어 번 있었지만 늘 소소한 수확만 있었다. 1학년 때 황토색 크레파스가 없어서 분홍으로 식목일 나무 심는 산을 표현하면서 받은 최우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때 알았다. 웅변이 성공한 것은 반복적인 연습과 엄마의 지도, 응원 합작이 거둔 결실이었다는 것을.


최근, ‘뒷것 김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뒷것. 무대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앞것’인 반면, 무대 뒤에서 그들을 돕고 지원하며 응원하는 김민기는 ‘뒷것’이라 했다. 엄마도 그랬다. 당신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뒤에서 힘껏 돕는 삶을 살았다. 딸을 가르치는 교육이 그랬다. 꽃다운 나이에 어린 딸 하나를 키우고 가르치려는 한가지 마음으로 살아온 여정이 그렇다. 현재 딸과 손녀, 손자의 모습도 엄마가 ‘뒷것’으로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뒤에 숨어서 묵묵히 희생하며 지지한 덕분이고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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