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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May 01. 2024

2-6. 흐릿한 회색빛 그해 겨울


이젠 세월이 흘러 어른들도 모두 떠나셨다. 증조할머니도, 할머니도, 어머니도...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십오 촉 백열등 아래 그때 그분들을 그려본다. 수이짓기(수수께끼)로 도란도란 안방을 밝히시던 증조할머니, 그리스로마신화와 숙향전을 읽고 술술 이야기를 엮어내시던 할머니, 외출하실 땐 언제나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어린 손녀 꼬막손 잡고 동네 어르신들 인사를 다니시던 할아버지, 늘 집안일로 바쁘고 고되어도 밝은 모습 잃지 않으시던 엄마. 나의 유년을 풍성하게, 내 삶의 뿌리를 든든하게 바로 세워주신 분들. 어디서 다시 만날까. 


증조할머니는 주민등록증에 88로 시작한다. 88올림픽이 아니라 구한말에 태어나셔서 그렇다. 고조할아버지가 외동이어서 증조할아버지가 양자로 오셨다. 그런 집에 아들 넷을 두셨으니 두 어깨에 언제나 묵직한 중심추가 달린 것처럼 당당하셨다. 시골에 약국이나 병원이 없던 시절이라 집 회벽에는 지네술이나 뱀술이 병마다 걸렸고 온갖 약초를 찌고 말려서 만든 환으로 빚은 조약이 봉지봉지 담겨 약 서랍 안을 채웠다. 집 안의 약사이자 치료자셨다. 작은집 막내 아재가 얼굴에 버짐이 생겼을 때는 집에 불러다 앉혀놓고 얼굴에 마늘을 문지르면 기겁을 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을 겪은 분들이다.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주인이던 시절. 국군이 밀리면 인민군이 치고 들어오고 인민군이 밀리면 국군이 주둔하던 때다. 일제강점기에 면에서 일하셨던 할아버지는 인민군이 쳐들어왔을 때 숙청 대상이었다. 할아버지뿐이었겠는가. 동네 뒷산 산마루에서는 연일 숙청의 피바람이 불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나날이었다. 증조할머니는 그 엄혹한 순간에도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탄원서 서명을 받아 할아버지를 구하셨다. 


늘 말씀은 없으셨다. 침묵 속에도 고요한 눈빛은 선명했고 비녀 꽂은 은빛 머리만큼 가르침도 분명하셨다. 말이 많은 것을 금하셨다. 웃음소리가 나도, 걸음걸이가 촐랑거려도, 대답하는 목소리가 달떠도, 밥 먹을 때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도 엄하게 단속하셨다. 당신 자신한테도 그랬다. 연로하신 탓일까,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 탓일까.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분이 안방에서 잘 눕지도 않으셨다. 꼿꼿하게 앉아 계시거나 웅크린 자세로 계시다가 여차하면 활동을 재개할 태세였다. 할머니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나면 엄마는 잽싸게 중재를 했다. 


“할무니, 바로 누우시면 더 편하실낀데....”


어린 손부가 말끝을 흐리며 끼어들면, 


“죽으모 원도 없이 누울끼라. 끙.”


며느리와 손부의 간섭이 마땅찮으신지 늘 마지막엔 ‘끙’으로 힘을 주며 말씀을 맺으셨다. 그 시절 아흔이 넘는 어른은 드물었다. 하동군 안에서도 ‘열 명이 되네, 안 되네’ 하며 귀하게 여기던 연세다. 어른이 계시니 그에 따른 집안 행사와 모임이 많았다. 세 분 어른 생신과 윗대 봉제사가 있었고 할아버지 사형제 분이 모두 동네에 가까이 사셨으니 작은집 생신과 혼사로 늘 분주했다. 


그날도 그랬다. 일가친척이 모두 왔다. 작은집 아재가 장가가는 날이었다. 우리 집과 작은집 셋 집 아재, 고모가 모두 모였다. 다들 한자리에 모이면 아재가 축구 한 팀, 고모가 배구 두 팀이 넘는다며 넉넉한 사촌들 모임을 흐뭇해하곤 했다. 그 시절엔 어떤 이는 도회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동네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기도 했다. 작은집 넷째 아재는 작은집 마당에서 전통혼례를 했다. 동네에서 전통혼례를 하면 언제나 우리 할아버지가 집사를 하셨다.


“신부 출~~!”


을 집사가 외치면 안방에 있던 신부가 고운 한복을 입고 나온다. 머리 위에는 족두리를 쓰고 항아님의 도움으로 비단길을 밟고 등장한다. 초례청 앞에 있던 신랑은 빙긋이 미소를 머금고 신부를 맞이한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신부와 사모관대를 한 늠름한 신랑이 마주 서면 혼례는 시작된다. 신부가 먼저 큰절을 올린다. 신부는 혼례를 도와주는 항아님의 도움으로 천천히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큰절을 했다. 신랑은 혼자 씩씩하게 답례로 절을 한다. 북쪽 나랏님을 향해 북향 사배를 하고 신랑, 신부가 마음을 합치는 술잔을 나눈다. 신부가 항아님의 도움으로 술잔을 입술에 댄 둥 만 둥 마신 척하는 반면, 신랑은 시원하게 한잔 들이켠다. 폐백과 기념 촬영. 이런 절차를 우리 할아버지가 모두 진행했었다. 


하지만 그날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그해에는 종친회에서 동네 한가운데 종가 비석 제막식을 하는 자리에도 할아버지는 참석을 못 하셨다. 바깥출입은 전혀 없이 그해에는 계속 사랑에 누워계셨다. 천식으로 오래도록 힘들어하셨다. 활동이 많아도, 오르막길을 올라도, 날씨가 추워도 그 증세는 나타났다.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고 늘 잔기침이 들리던 사랑채. 병풍으로 삼면을 두르고 군불을 지펴도 할아버지 방은 항상 추웠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금슬이 좋아서 천식도 같이 앓는다고들 했지만 내가 본 모습은 달랐다. 천식에 좋다는 모과차도, 대봉감 홍시도 두 분은 늘 따로 드셨다. 


작은집 아재 혼례를 마치고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 두 분이 모두 오셨다. 방마다 군불을 지피고 사람 수만큼이나 온기가 돌고 훈훈했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에는 어른들이 끊임없이 약사발을 들고 드나들고 안채에는 도란도란 이야기가 가득했다. 혼례 이야기, 할아버지 병세 이야기, 아이들 공부 이야기……. 긴긴 겨울밤 동안 이야기 소리가 조용조용 이어지다가 사그라들고 침묵으로 잠잠하다가 날이 새었다. 할아버지는 자녀와 조카, 손자들을 곁에 두고 보고 싶으셨던 것일까? 한자리에 모두 불러놓고 그 새벽에 떠나셨다. 


이른 새벽에 대숲 밑 큰집 아재가 급히 올라오셨다. 희미한 새벽하늘을 가르며 지붕에 올라가 할아버지 흰 저고리를 허공에다 날리며 초혼을 했다. 넓은 창공을 향해 끝을 모르게 퍼져나가던 그 허허롭고 서러운 울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이~ 어~~이~ 야암 양반~~~” 


하늘 끝을 향해 부르며 멀리 가지 않았으면 빨리 돌아오라고, 떠나는 길이면 가는 길 평안하기를 비는……. 그런 내용이었다. 


삼일장 동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는 빈소가 마련된 사랑채에 마주 앉아 조문객을 맞았다. 사흘 동안 조문객이 올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손인 사촌 오라버니는 군에서 휴가를 나오고 어린 손자와 손녀들도 하얀 상치마를 입었다. 출상하는 날에는 마을 한가운데 앞마당에서도 조문을 받고 노제를 지냈다. 어린 손녀들도 상여 옆에 줄줄이 엎드려 어른들을 따라 곡을 했다. 상여는 상두꾼의 만가와 만장 행렬을 길게 이끌고 동네 앞 미루나무길 신작로를 따라 돌았다. 동쪽으로 가서 노제 한 번, 서쪽으로 돌며 노제 한 번. 동네 어귀마다 할아버지 상여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동네 뒤 선산으로 굽이굽이 올랐다. 


엄마한테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셨다. 일꾼들도 모두 내보내고 집안일이며 바깥 행사까지 엄마가 도맡아 챙겨야 했다. 모두 떠난 사랑채 빈소는 막내며느리가 흰 소복 차림으로 홀로 지켰다. 주인 없는 사랑채 빈소에 아침, 저녁으로 메를 올리며 꺼이꺼이 서럽도록 곡을 했다. 아버님 없이 어찌 살지, 이렇게 우리만 남겨두고 가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아버님 없이는 못 산다는 내용의 곡소리가 대숲을 울리고, 뒷산을 울리고, 온 동네 사람을 다 울렸다. 엄마가 그렇게 서럽게 우시는 모습을 그 전이나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 떠나신 빈자리가 그렇게 컸을까?


그해 겨울은 흐릿한 회색빛이다. 흑백영화처럼 늘 그렇게만 기억된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수출 백억 불 달성을 환호하고 한강의 기적을 외쳤다. 한반도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지만 우리 집은 딴 세상처럼 대숲 속에 갇혀 조용히 슬픔을 삼키며 기나긴 겨울을 견디었다. 일꾼들도 떠나고, 사랑채도 비고, 안채에는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나 그렇게 여자만 사 대가 덩그러니 남아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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