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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Apr 18. 2024

프롤로그

사 대 여성 가장 어머니 이야기

그해 겨울은 쌀쌀했다. 


볕살이 좋은 앞터 어느 집 돌담 옆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너그 집은 여자만 사 대가 살제?”


우리 집 일꾼의 딸이 가까이 다가와 할아버지 잃은 내게 건넨 말이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빛깔을 담고 어린 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왔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고 한참이 지나도 그 순간의 생경하고 당혹스러운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충격도 컸기 때문이리라. 두꺼운 얼음장이 깨지고 무게중심을 잃을 만큼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풀이 죽어서 집으로 들어간 나를 금방 알아본 사람은 엄마였다. 자초지종을 듣고 가만히 있을 분은 아니었다. 집 뒤 대울타리 옆으로 난 샛길을 따라 그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뒷날 아침까지 묵묵히 기다릴 수 없는 엄마다. 


“얼라들 듣는 데 무슨 말을 우찌 했길래 이 집 아아가 우리 아한테 말을 함부로 한단 말이욧.”


저녁을 준비하다가 산 밑으로 내린 땅거미를 밟고 씩씩거리며 갔던 엄마는 화가 반분이나 풀렸는지 무거운 침묵만 안고 돌아왔다. 저녁 내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채 일꾼들 빈방에 동네 초등학교 남자 선생님을 모셔오는 것이었다. 그 작업은 이튿날 아침 선생님들 하숙집으로 찾아가 바로 해결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첫 발령을 받아 온 스물둘의 총각 선생님이다. 회색빛이 만연하던 집이 가을 호수에 내린 윤슬처럼 빛났다. 드디어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제각각 색을 되찾았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이른 아침에 산책을 나서는 일부터 카세트에서 대학가요제 노래나 뜻도 모를 팝송이 흘러나오는 일까지. 젊고 푸른 기운을 가득 채우며 새 세상을 창출했다. 


밤에는 동갑내기 사촌 아우와 과외 수업을 받고 부진했던 기초와 선행학습을 했다.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잡지를 구독하는가 하면 예체능까지 섭렵하여 시골 동네에서 피아노까지 칠 기세였다. 그해 일 년을 그렇게 살았다. 


 내가 바라본 엄마는 씩씩한 분이셨다. 지아비를 잃고도 좌절하거나 한탄하지 않으셨다. 어떠한 상황에도 절망은 버리고 희망이 비추는 길을 기어코 찾아내셨다. 시어른들을 모시고 살면서 힘을 내었고, 집 안에 남자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자 학교 선생님을 사랑에 모셨다. 유산으로 살던 집을 받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 집을 마련하여 나섰다. 


운명은 늘 엄마 편이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운명마저도 엄마 편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긍정적인 관점으로 지혜를 발휘하며 운명을 개척하셨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우면 작은 일이라도 찾아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애썼으며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다. '죽어지모 썩어질 몸'이라시던 증조할머니 말씀을 따르며 '녹슬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리라'는 각오로 사시는 듯했다. 검소하고 절제하며 긍정하고 기도하는 생활이 스스로 일어서고 나눌 수 있는 삶을 만들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엄마의 모습을 들려주고 싶다.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타인을 포용하는 태도, 벼락같은 운명마저도 끌어안으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헤쳐나가는 지혜로웠던 한 여인의 삶을 보여주고 싶다. 나에게는 그리운 모든 순간을 되살려서 기록하여 엄마를 기억하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책으로 영원히 함께 존재하고 싶다. 


이 책은 모두 4부다. 1부는 배경이 새실이다. 부모님 전통혼례와 나의 외가를 중심으로 내용을 엮었다. 2부는 한재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딸을 낳고, 나의 아버지와 사별한 후 시어른들과 살았던 이야기다. 3부는 봉래동이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도시로 분가한 후 학생들 하숙집을 하면서 지낸 내용이다. 학교 옆 도시 변두리 하숙집과 이웃과 함께했던 일상을 담았다. 4부는 딸과 함께한 추억과 교회 이야기다. 기쁘고 즐겁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많은 시절이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는 엄마 가신 이후 딸로서 아쉬움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속에 다시 태어난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각자의 엄마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성으로서 삶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면서 지혜로운 선택을 배우게 될 것이다. 더불어 7,80년대 사 대가 사는 삶을 통해 그 시대 정서와 문화를 느끼는 재미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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