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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담 May 09. 2019

내 어머니 이야기

상금 한 번 타보겠다고 억지로 쓰니 역시나 안되는 후기

 업무 때문에 거의 실용도서만 찾다보니 온라인으로만 주문하면 돼서 서점을 한동안 찾지 않았다. 그러다 강남에서 약속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한 번 둘러볼 겸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평소 별 관심도 없던 만화코너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책들 중에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책이 한 눈에 들어왔다. 투박한 판화 같은 그림체가 굳어있던 마음 한 켠을 뭉클하게 했는지, 아마도 그것이 ‘어머니’라는 제목 때문이었겠지만, 책을 사려고 들어갔던 서점이 아니었음에도 4권짜리 무거운 걸 가지고 나왔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펼쳤다. 시작부터 1908년이라고 되어있어, 책이 나온지 몇 십년 되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인가 했다가 작가의 외할머니부터 진행되는 구조였다.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내 어머니에게도 또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 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김은성 작가가 실제로 그림을 어떻게 그리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개성이 뚜렷하고 한국적 정서를 담뿍 담은 판화 같은 기법이 너무 좋았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함에도 저마다 다 생김이 다르고 뚜렷해서, 예전 박경리 작가의 <토지>도 이런 체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는 각주로 설명이 되있었지만, 그래도 생소한 어머니 복동녀의 함경도 사투리를 그대로 두어 읽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만화를 읽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은 처음인 듯한데, 그만큼 더 생생하게 전해졌다. 내가 나기 전에 일찍이 돌아가셨던 양가 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시지 않았을까.

 작가님의 나이가 65년생으로 어머니 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나셔서 그런지 뭔가 더 기분히 묘했다. 나는 어머니를 사진 아닌 다른 것으로 남기려고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었던가. 어찌보면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가장 평범하고 흔한 인물의 자서전을 쓴 것인데 나는 내 스스로도 부끄럽다 여기고, 어머니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불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과거의 이야기를 한 번씩 들어도 대체로 힘들거나 슬픈 이야기 뿐이라 가급적 묻지 않았는데, 분명 행복하고 좋았던 일들도 많았었는데 난 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출생부터 첫사랑, 결혼과 출생, 투병, 장성한 자녀와의 이야기. 한 인간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안의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다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6.25를 거쳐, 이승만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까지. 함경도 북청에서 거제도, 논산에서 서울. 학교 교과서와 시험 문제로만 마주하던 역사를,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만 느끼던 북한, 일본, 러시아, 미국의 이야기를 노인이 된 한 여인의 입에서. 그 딸의 손을 거쳐 읽게 되었을 때 다가오는 느낌. 분명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더 깊숙하게 이해되는 우리의 옛날 이야기.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이고, 그것이 외할머니든, 어머니든, 본인이든 내가 아픈 것보다 자식이 아플 때 더 고통스럽고, 자식이 나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와는 다른 그 마음. 모성애를 강조한 영화, 다른 소설들도 많이 보았지만 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깊이 와닿은 책이 또 있었을까싶다.

 교육의 여건만 뒤따라준다면, 학교에서 무작정 근현대사 문제집만 펼쳐볼 것이 아니라 이런 책을 읽게 하고 독후감 쓰는 과제를 주는 것이 훨씬 역사 인식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4부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많지만, 작가 역시 어머니의 일부다. 나 역시 나의 어머니의 일부다. 분명 ‘김은성’이라는 작가의 어머니와 그 가계에 관한 책인데 나의 어머니가 계속 겹쳐진다. 아마 책을 읽은 독자들 모두가 같이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TV를 보지 않아 몰랐는데, 책을 읽고 검색을 해보니 유시민 전 장관이 나왔던 알쓸신잡이라는 프로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사라져서는 안 될 책’이라는 극찬을 했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절판이 되었다가 복간 되어서 나온 말 같은데 단순히 사라져서 뿐만이 아닌 널리 읽혀야할 책이 아닐까 한다. 종전이라는 말이 대두되는 화해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단순히 멀어서 못보는 게 아니라, 정말 만날 수가 없는 가족. 보고싶어도 꿈에서만 만나는 가족들. 바쁘다는 핑계로, 돈이 아깝다는 핑계로 게으름에 찾아가지 않는 나로서는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지만, 그래도 좋다. 

 나이가 들어감에 몸이 쇠약해지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더 늦게 전에 어머니의 말을 녹취까지해서 해낸 작가님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가장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를, 자식을 등에 업고 피난까지 와서 살아남아 말로 풀어낸, 기억력 대단한 놋새, 어머니 귀동녀님 역시 더 존경한다. 세상의 모든, 열 달 배 아파 누군가의 인생을 만들어 낸 어머니를 존경한다. 갈등화 되고 있는 페미니즘 문제에, 우리 여성에 대한 인식에도 큰 공부가 되는 책이 아닐까한다.

 내가 딸이었다면, 지금도 데면데면한 어머니와 가까워졌을까.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나도 어머니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 어머니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일찍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여의고 중학교 때부터 미싱일을 했다는 어머니 역시 한없이 존경받아 마땅한 분인데 말이다. 

 개정판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 모친의 인지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인데 더 늦게 전에 남북이 더 가까워져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건강히, 오래 사시기를. 

 30년 만에 어머니와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할 수 있을 용기를 준 감사한 선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이해와 화해의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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