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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Oct 22. 2022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Lesson 5


“우와, 이번엔 색감이 인상적이네요.”

“그렇죠. 사람들이 '꽃'이라고 하면 빨강, 노랑, 주황 색감을 떠올리잖아요? 우리가 지난번에 썼던 꽃들처럼요.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블루와 화이트 톤으로 준비해 봤어요. 언니, 혹시 생각나는 파란색 꽃이 있어요?”

“글쎄요.. 사실 내 머릿속에는 파란색 뿐 아니라 빨갛고 노란 꽃들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어요.”


“요새는 염색된 생화가 쓰이기도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파란색 꽃을 흔하게 볼 수가 없어요. 꽃은 번식을 위해 곤충을 유인하려고 다양한 색깔을 띠는데, 파란색 꽃이 두드러져 보여서 먹이를 찾을 때 효과적이래요. 그럼 오히려 파란색 꽃이 많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한테 흰색이나 노란색, 빨간색으로 보이는 꽃이 벌에게는 파란색으로 보인데요. 더구나 파란색이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유전자가 식물에 아주 드물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파란색 꽃이 흔하지 않은 거래요.”


“그래서 그랬나? 오늘 꽃들 보는데 매우 신선했어요.”

“오늘 꽃들 중에 수국, 용담초, 옥시펜타늄(블루스타)이 블루 계열의 꽃이에요. 언니가 지난주에 작약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했잖아요? 오늘은 하얀색으로 준비했어요. 향기 맡아봐요. 색은 옅은데, 향이 더 진하게 나요.”

“고급스러운 화장품이나 향수냄새 같아요. 꽃에서 이런 향기가 나는구나..”

“이 두 송이를 비교해 보실래요? 같은 하얀색 같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요. 이 녀석은 좀 더 투명하게 하야면서 꽃이 활짝 피고, 이 녀석은 크림색으로 둥글게 펴요.”

 

아! 미세한 차이까지 구분하는 섬세함이 반가웠다.

먹고사는 것, 생존의 엄중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돈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기엔 그저 다 똑같은 하얀색인데 뭘 그리 신경을 써. 어차피 돈 되는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한다.

예민하게 흰색과 크림색의 차이를 구분하고, 그것을 적확하게 구현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로부터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예고에서 1년 동안 근무를 했었다. 그곳에서 예술적 표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연극 무대에서 “네.” 짧은 대사를 말하기 위해 ‘네.’, ‘네..’, ‘네에.’ ,‘예.’ ,‘예..’ 수백 번 연습하던 K. 두 마디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두 달이 넘도록 밤새 연습하던 Y. 이들이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예술품들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흰색 계열로 아가판서스, 호접란, 마트리카리아를 더 준비했고요, 소재로는 덴드륨과 영춘화를 샀어요. 연노랑 거베라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해 봐요.”

“꽃이 나비를 닮아서 호접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화분으로 선물하는 것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바구니에 꽂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어요.”

“잎을 자세히 보고 질감도 느껴보세요. 진주 펄이 든 것 같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참 예뻐요. 그런데 이 우아한 친구가, 쉽게 상해서 배송할 때는 신경이 많이 쓰이고 조심스러워요.”


“이 꽃들로도 스파이럴 연습을 하나요?”

“예. 먼저 연습하고 바구니에 꽂을 거예요. 특히 호접란은 다발로 잡기가 어려울 텐데, 이번에 친해져 봐요. 꽃대의 휘어진 곡선이 아름다워서 잘 사용하면 멋스럽거든요. 꽃 한 대를 어떻게 자르는지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낼 수가 있으니, 이리저리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내가 꽃을 다루는 게 아니라 꽃이 나를 다루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휘어지는 곡선을 따라 요리로 조리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안녕? 그야말로 꽃들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꽃다발 만드는 연습이 끝난 후, 바구니를 만들었다. 역시 호접란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스러웠지만, 큰 꽃들이 많아서 바구니 공간이 바로 채워졌다. 잘 만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꽃들이 만들어내는 단정한 아웃라인이 마음에 들었다. 큰 꽃들의 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옥시와 마트리카리아가 귀여웠다.


집에 돌아와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밑줄이 그어진 부분을 읽었다.


취미로 들었던 수업 혹은 우연히 정원에서 꺾은 꽃 한 송이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며 인생을 이끄는 열정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매만져 심미적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굉장한 만족감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대상으로 작업할 기회를 줄 수 있다니 매우 영광이며, 동시에 책임감을 느낀다. 이 일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 캘버트 크레리, 『 플라워 스쿨 』


아름다운 꽃을 매만지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이 시기가 지나면, 심미적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 어쩌면 꽃을 다루는 일에 책임감을 느낄 정도까지 가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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