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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May 14. 2024

'미디어' 바깥의 악마를 마주하다.

<악마와의 토크쇼> 단평

※ <악마와의 토크쇼>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 화제작 중 하나로 꼽혔던 <악마와의 토크쇼>가 지난 5월 8일 개봉하였다. 개인적으로 올해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 트위터 쪽에서 반응이 워낙 좋기도 하였고 소재가 꽤나 신선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개봉주에 보지 못하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생각에 비 오는 날 밤 주저하지 않고 이 영화를 예매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는 1970년대 실존했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한때 명성을 누렸지만 이제는 한물간 심야 토크쇼가 되어버린 '나이트아울'의 MC 잭 델로이. 핼러윈을 앞둔 전날 밤,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린 시청률 회복을 위해 '나이트아울' 쇼의 제작진들은 영능력자들을 모아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첫 번째 손님으로 나온 크리스투는 처음에는 허당인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들 중 한 어머니와 딸의 개인사를 맞추며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크리스투가 다른 어떤 강한 영혼이 있다고 말한 이후 스튜디오에 이상 현상에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어수선해진다. 첫 번째 광고 타임이 끝나고 두 번째 손님으로 나온 초능력 사냥꾼 헤이그는 나오자마자 크리스투와 신경전을 벌인다. 첫 번째 광고 타임 전부터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던 크리스투는 갑작스럽게 엑토플라즘을 뿜어내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다. 이후 세 번째 게스트로 '악마와의 대화'라는 책을 집필한 준과 그녀가 보살피는 사이비 컬트 집단의 유일한 생존자 릴리가 나오면서 쇼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기 시작한다.


사실 한국 관객들에게 있어서 '악마'는 그다지 공포스러운 존재는 아니다. 미국 관객들이 악마에 공포심을 느낀다면 한국 관객들은 악마보다는 오히려 귀신에 공포심을 느끼는 편이다. 이는 문화의 차이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악마와의 토크쇼>는 한국인들이 공포심을 느끼기 어려운 존재인 '악마'를 TV 프로그램을 직접적으로 보는 듯한 연출에 녹여내면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다. 악마를 등장시키기 위해 영화는 초반부터 계속해서 무엇인가 벌어질 것이라는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쌓아간다. 핼러윈이라는 시간적 배경, 허술한 영매사에게 갑자기 나타난 엑토플라즘, 저절로 켜져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테레민, 브라운관 너머의 관객들을 불길하게 응시하는 릴리 등등 차분하게 점진적으로 '무엇인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쌓아가며 이 영화의 마지막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불길한 분위기를 전개시키던 영화가 절정에 도달하는 지점은 바로 준이 릴리의 몸에 잠들어있는 악마를 깨웠을 때이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이 영화의 제목인 '악마의 강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사건을 벌어지게 한 것이 바로 '관객들'이라는 점에서이다. 상황이 생각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준은 잭에게 더 이상 쇼를 진행시키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청률에 눈이 먼 잭은 계속 쇼를 진행시키고, 프로그램을 보러 온 관객들을 부추긴다. 이에 관객들은 준에게 악마를 소환시키는 것을 보여달라며 그들이 악마를 소환시킬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악마를 소환시킨 것은 준이었지만, 그가 악마를 소환시키도록 압박한 것은 잭과 관객들이었다. 잭과 관객들은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지 못하고 그런 행동을 벌인 것이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상상 이상의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관객들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조금씩 동일선상에 놓기 시작한다.



처음에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시작하면서 영화와 이를 보고 있는 관객들을 분리하지만, 점점 더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이 영화의 일부가 된다. 영화는 '나이트아울' 쇼가 전개되는 동안에는 70년대 TV 프로그램처럼 연출되고, 쇼의 비하인드를 보여줄 때는 흑백 화면으로 연출된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은 영화가 전개시키려는 이야기의 모든 면을 보게 되고,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목격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일부분으로 녹아든다. 릴리가 등장한 이후 화면을 빤히 쳐다보는 장면도 이러한 연출의 일부이다. 영화 속에서는 릴리는 방송국 카메라를 보고 있는 것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릴리와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기에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러한 부분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마침내 TV 프로그램에서 악마가 소환되어 끔찍한 참상이 벌어진 뒤, 잭이 겪게 되는 환상 속에서이다. 자신이 과거 출연했던 나이트아울 쇼에 다시 들어가게 된 잭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TV를 끄라고 외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것이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관객들은 자신들을 향한 잭의 말을 들어줄 수 없는데,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의로 멈출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편 동시에 관객들은 마침내 악마를 마주하게 된 잭이 영화 속에서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TV 프로그램의 관객들이 준을 압박하는 장면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본 것처럼 관객들은 스크린 밖에서 잭이 얼마나 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지 자신도 모르게 자극적인 것을 기대하면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과 미디어에 대한 시청자 및 관객들의 태도를 영리하게 결합시키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오컬트 장르에 페이크 다큐멘터리, 70년대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요소를 섞어 만든 공포영화이면서 동시에 미디어에서 더욱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긴 영화이기도 하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 다소 아쉽다는 평이 많으나, 이 영화가 공포 영화의 틀을 통해 끊임없이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던지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와 공포 영화 장르의 특성을 온전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꼭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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