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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May 27. 2017

경상권 주제별 체험학습 : 진주, 통영, 거제

진주, 다시 만나다.

아침 7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좋은 세상의 도시 진주입니다.' 문장을 13시에 만났다.

'에나. 에나?..' 그가 유난히 자주 사용했던 진주 방언이었다. 토속어가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진주를 작년 사전 답사에 이어 다시 왔다. 거뭇하고 긴 얼굴이 아브라함 링컨의 분위기를 닮았다고 생각했그였다. 어느 설교 단상에서 진리를 전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여러모로 신세를 졌던 의 고향에서 공무를 시작했다.


놋그릇에 담긴 육회 진주비빔밥을 아이들은 소처럼 되새김할 요량인지 10여 분 만에 쓱싹했다. 사후 만족도 평가의 큰 요인음식이다. 속으로 속되게 흐뭇했다. 

진주의 랜드마크 진주성에선 5월 26일부터 열리는 논개 축제 준비로 바빴다.

안전요원이 예약 없었던 문화 해설사를 어렵게 모시고 왔음을 자찬했다. 불뚝한 그의 뱃살이 함께 춤을 추었다.

"진주는 경남 초ᆞ중ᆞ고 선생님들을 배출하는 도시로서, 경남 교육 중추 역할을 합니다. 전통의 진주교대, 경상 사범대.."

문화 해설사는 진주의 교육적 긍지를 강조했다. 충무공 시호를 12명이나 받았다는 설명도 했다. 아이들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임진란 3대 대첩을 대답 못하는 아이들에게 해설사의 실망하는 표정이 과하게 정직했다. 행주대첩, 한산대첩까지는 대답하더라만.

촉석루 마루에 맨발로 올라섰다. 나무 바닥에 애잔한 옛날이 찐득했다. 기녀의 애국지정을 품고 남강은 유유히 흘렀다.      

이순신 공원 해안길을 버스에 남아 있겠다는 아이 둘을 구슬려서 함께 걸었다.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둘 다 꿈이 없다고 했다. 날개가 돋지 않아서 애처로웠다.

미니어처 검은 숲이 연상되는 속눈썹을 가진 아이였다. 속눈썹에 감탄했더니 속눈썹 파마와 속눈썹 심기의 장단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여자들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공들여 꾸미는 을 남자들이 착각하는 거. 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인 줄 아는데, 여자들은 자기만족이란 거 있잖아? 여대 학생들이 멋을 더 많이 부려."

"맞아요. 맞아요.. 꾸미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교실에서는 입을 늘 앙다물고 있던 그 아이가 생동감 있게 반응을 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이 추억으로 새겨지기를 바랐다. 18살 아이의 여리한 손을 잡고 갯바위를 건너고 또 건넜다. 푸른 바다와 맞닿은 하늘에는 흰구름이 평화로웠다.

통영으로. 루지 체험

한 시간 이동으로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 도착했다.

통영의 선주(船主) 앞에선 돈 자랑 말라던 옛 충무다. 선주의 딸을 사랑하고도 친구에게 첫사랑을 뺏긴 백석 시인이 시린 마음을 다스린 곳이다. 다도해를 바라보며 출렁이던 시심을 시로 탄생시켰던 통영이다. 


청마 유치환 시인과 이영도 시인의 연정을 키운 통영여고도 문학 산실이다.


미륵산을 오르면 하롱베이를 연상할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박경리 소설가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미륵산이 품은 자랑이다.

이 시대, 수능 대세인 '신새벽에 너의 이름을 부른다. 민주주의 만세'라고 노래했던 김지하 시인의 장모라고 아이들에게 일러 주었다. 그러한 정보는 산을 오르는 의지를 자극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언덕 같은 산도 싫어한다. 땀 흘리는 것이 싫단다.


통영은 그렇게 문학적인 서정의 도시이나 주제별 체험학습 여정으로 문학 탐사는 소외당한다. 학교 폭력 SNS 사안을 접하다 보면 알 건 다 아는 나이다. 그런데 주제별 체험학습 설문 결과를 보면 잘 먹고 현란하고 통쾌한 것에 관심이 더 많다. 단세포 고2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가장 한 체험은 Luge였다. 세계 5군데만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 본사에서 운영을 해서 티켓팅이 뉴질랜드 전산망으로 전송되기에 줄 서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아이들 뒤에서 카트를 매단 스카이라이드 후에 또다시 한 시간을 기다렸다. 틱 장애가 있는 아이가 한 손을 가끔씩 뗀다는 사실을 안전요원에게 말했다. 카트에 앉고 나서야 체험이 불가능하다고 다. 동행한 특수 학급 교사가 불편한 기색 없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다. 제한이 일상이라는 듯이.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을 달리는 Luge 체험에 아이들은 주제별 체험의 방점을 찍었다. 맥박들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렸을 것이다.

통유리를 덮은 암막 커튼이 손끝 두 마디로도 스르르 밀렸다. 큼직한 창으로 들어온 통영 미장센에 연 이틀 젖었다.


어둠이 다도해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수평선을 가뿐히 디딘 후에 파도를 따라 해안으로 밀려왔다. 그 어둠은 고개를 한 번 들어 숨결가지런히 다듬었다. 마리나 리조트 308호 내 홀로의 방 통유리를 건너왔다. 길게 드러누웠다.

칠흑의 바다에서 파도는 밤새 철썩였다.

양귀비 꽃밭의 꽃들은 얇은 몸을 파르르 떨었고, 정박한 낡은 고깃배에 해달이 올라앉았다.

공무 외적인 사소한 풍경이 경이로움으로 마음을 채웠다. 풋풋한 나이의 남교사가 양귀비꽃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들떠서 코를 들이댈까 망설였다. 관상용인 줄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다른 는 어젯밤에 순식간에 떨어지던 별똥별을 처음 보았다고 얘기했다. 나는 꼬리 긴 해달을 처음 만난 저녁이 있었고, 잎과 표정이 없어도 환상적 아름다움이었던 흰꽃을 처음 본 새벽이 있었다.

여전히 처음이라는 게 많다. 살아도 살아도 처음, 삶에는 무수한 처음이 있다.

거제로
신선대 & 바람의 언덕 & 흑진주 해변

통영에서 50분을 버스가 달렸다. 거제였다. 통영이 여성적이고 서정적이라면 거제는 남성적인 이미지의 도시라고 느꼈다.

포로수용소에서 역사를 되새기는 체험이 여정에서 빠졌다. 사후 만족도 평가가 정보 공개 대상이 되면서부터 맛집과 영업 홍보가 강한 여행 상품에 밀리는 현실 탓이다.


주제별 체험학습이 아니라 힐링 체험이란 용어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깊게 했던 곳은 거제 씨월드였다.

유치원생들과 중년들과 노년들과 함께 한 체험이었으나 돌고래 묘기에는 세대 차이 없는 집중력을 보았다. 놀랍고 아름다운 집중력이었다.

손에 소독액을 묻히고 벨루가 체험을 했다. 트레이너가 던져준 물고기 한 마리씩 받아먹고 벨루가의 입은 뭇사람의 손 혹은 얼굴에 닿았다. 인간 외의 살점이 불편한 나는 장갑을 낀 채 소독액을 묻혔다.

돌고래 쇼와 패키지라 벨루가와의 포토 타임에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숨 쉬 것들의 숙명적인 삶에 대한 생각. 가엾은 벨루가!

절벽 아래의 파도 소리는 바람에 묻혔다. 신선대는 아찔했고 아이들의 사진 포즈는 행위 예술이었다. 인솔하면서 가장 마음을 조아렸던 곳이었. 내려오니 진도 한 단원을 뗀 것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홀가분하고 후련했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NEIS 대문 글구와 세월호압박감이 여간하지 않았다. 오래 멈춘 숨결이 목젖을 타고 서서히 풀어졌다.

10분을 걸어 바람의 언덕으로 이동했다.

시를 쓰라면 풍차 하나 덩그러니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옥빛 바다가 이내 마음을 홀다.

흰 치맛자락 너풀거리는 아이의 센스 있는 코디, 바람, 하늘, 물빛, 그리고 아이들.. 어우러져 풍경이 되었다.

버스로 20분을 달려 흑진주 해변으로 이동했다.

지명위원회 위원들의 명명이 과했다는 생각을 한 건 바람의 언덕이나 흑진주 해변이나 마찬가지였다.


검은 몽돌의 흑진주 해변에서 남학생들은 물수제비 놀이에 빠졌다. 자연친화적인 놀이가 흑진주 해변에서 계승되고 있었다.

"왜 안 봐주세요 ~~~ 세 개나 만들었는데 ~~~"

징징거리던 애, 지금 생각해귀엽다.

다시 통영으로.
미륵산 케이블카 & 한려수도 감상

마지막 날 새벽 5시 15분이었다. 비상 대비해서 잠그지 않았던 현관문을 조용히 밀고 나왔다. 야간 안전 요원의 초롱한 눈빛과 마주했다. 새벽까지 지치지 않은 눈빛이 감사했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선다. 그랬다.


새벽 멍게 손질로 아낙들이 바다 위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해안길을 따라 국제음악당을 지나고 미륵산 아래를 지나 등대 낚시공원까지 걸었다.


집이 그리웠다. 귀소 본능이 꿈틀거렸다.

동피랑 벽화 마을이 여정의 마무리였다.

금요일 오후의 관광버스는 7시간을 달렸다. 서아시아 먼 나라로 날아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끓는 아이들 체질에 세팅된 에어컨의 냉기가 세포까지 스며들었다. 이러다 슬며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팽팽하게 옭아맨 마음이 몸을 이끌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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