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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Aug 05. 2018

초원에서 읽은 것들

몽골 기행기 2

역대급 더위에 눈치 없는 자랑으로 들릴는지. 몽골은 서늘한 여름이었다.
baggage claim 위치를 확인한 후에 바깥 기온이 궁금하여 공항 출입문으로 얼른 뛰어갔다. 상체만 슬쩍 내밀어 보았다. 
 '택시 타실래요?' 한국어로 다가서는 몽골 남자는 나의 흐뭇함을 읽었을  리 없었다. 13°C 였다.
과하지 않을까 짐작하여 털모자만 떼고 가져간 패딩이 아침과 저녁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벅트칸의 느낌은 야마트산과는 달랐다.

야마트산은 야생화가 아니었다면 지루했을 법한 오름길과 확실한 내리막길 한 번으로 끝났다. 

성적인 야마트산과 남성적인 벅트칸산, 산에 대한 안목이 없는 내게도 그렇게 선명한 대비였다.
무정물조차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얼굴이 있고 속살이 있다고 느꼈다.

드칸산 최고봉 체체궁산의 2,300여 m 고도는 산꾼의 말대로 의미 없는 숫자였다. 전날 밤에 울란바토르 호텔의 커피 믹서가 탱글탱글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면서 이미 높은 곳에 있음을 실감했었다.
1,650m 고도의 만취르 사원 입구에서 출발하여 정상 체체궁산까지 700여 m 오르는 트레킹이었으나, 일행 중 한 사람은 고산증으로 메스꺼움과 두통에 시달려 자동차에 머물렀다.

시베리아 송림 사이로 물리적 규칙 없이 표기한 숫자를 따라 걸었다. 마지막 55번까지 편안한 숲길과 질퍽한 늪길이 반복되었다. 6시간 정도 걸었다. 바짓가랑이를 툭툭 치며 진흙들이 달라붙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꼬맹이처럼 진흙들이 순박했다. 티끌을 탁탁 털어대는 결벽증이 대자연의 한가운데 있으면 수더분해진다. 자연 속으로 나를 빠뜨려야 하는 확실한 이유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가지를 만들고 제 잎을 기르며 최대치의 시간을 살다 간 나무의 주검들을 마주했다. 산짐승에게 살점을 뜯기고 백골로 풀숲에 뒹굴던 말(馬)의 머리를 보았다. 자연은 생사의 가르침이었다. 

    말 해골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고개를 돌리면 구름의 무게를 못 이기고 금세 비를 쏟을 것 같은 하늘로 변했다. 변화무쌍한 하늘에 감탄사를 연발하니 복식 호흡이 저절로 되었다.

체체궁산 가는 길의 감동 8할은 하늘이었다.

하늘에 마음을 뺏겨 고개를 자꾸 올리며 걷다가 물기 머금은 바위에 헛발을 디뎠다. 미끄러지면서 엉겁결에 체중을 떠받친 오른손을 다쳤다. 돌아오는 날까지 생수 마개조차 열 수 없었다. 그러함에도 마냥 좋았다.

통증은 없었으나 힘을 전혀 쓸 수 없었다. 오른손의 평 수고를 처음 깨달았다. 

안개가 멋스럽게 피어올랐다. 저마다 감탄으로 자연과 동화된 순간만큼은 사람도 풍경의 일부였다.

일행들이 몽골의 대자연에 지순하게 감탄했고, 무엇보다 천연의 청량함을 찬탄했다. 천심을 되찾은 사람들의 얼굴과 언어도 자연이 되었다.


서쪽으로 알타이 산맥을 넘어 세계를 제패한 민족, 몽골족은 12세기에 동아시아 최초로 제국을 이루었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말을 존중하고 바위를 신성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울란바토르를 지켜준다는 독수리 바위에 올라 한국인들이 사진을 찍었다. 몽골리언의 성산 체체궁산 존엄을 위해 개념 있는 누군가가 '현지인들이 싫어한대요.'라고 소리쳤다.

    "아들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어디를 가더라도 3년이 걸리는 땅을 물려주었다.  - 칭기즈칸 "

울란바토르. 목초지 게르

러시아의 영향으로 키릴 문자를 쓰지만 알다시피 몽골어는 터키나 우리와 같은 어군에 속한다. 터키를 우리처럼 가깝게 느끼는 몽골리언을 통해 언어의 결속력을 새삼 느꼈다.


420만 인구의 절반이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도시 문화를 향유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초지에서 유목민으로 산다. 푸른 하늘과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과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바람과 더불어 살고 있다. 라마 불교 혹은 그들의 성황당 어워에 기도하며 자연친화적인 삶을 다. 


습도가 높아 사막이 될 수 없고 건조하여 숲은 되지 못하는 초원이다. 양 떼들이 초원을 차지한 외떡잎식물을 뜯는다. 


광활한 초원과 야크 무리들을 가슴속에 담았다.

그리고, 초원 위로 마음의 타래들을 주욱 펼쳐 보았다.

수천 년ㆍ수만 년을 달려온 별빛이 지금 이곳에 머무는 일, 넓디넓은 우주 속의 초록별 지구, 그 안에서 티끌 만한 내가 꿈꾸고 욕망하는 것들, 소꿉장난 같은 삶에서 핧퀴던 말들에 걸려 넘어지고 채기를 긁고 긁으며 덧낸 시간들이  너덜거렸다.


몽골인들은 우리 땅을 설렁거스(무지개의 나라)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부른다지만, 광활한 초원은 내가 참 작은 나라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삶의 작은 반경만큼 세상을 좁게 바라보고 작은 일들로 스스로를 구속하면서 작게 살고 있음이 안쓰러워졌다.


야생화도 양 떼도 유유히 살고 있는 초원. 우주와 소통하는 들꽃과 가축들. 그리고 유목민들...

초원의 들꽃처럼, 양 떼처럼, 나를 방생하고 싶다.

진정한 자유는 탈인간ㆍ친자연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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