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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Dec 19. 2018

파도 소리길 따라 감은사지까지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슬도의 파도는 비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몽돌 해변의 주먹만한 몽돌을 스치는 파도는 서해의 잘디잔 몽돌에 바숴지던 은빛 소리를 닮지 못했다. 귓전에서 나직하고 사랑스럽 울리던 '차르르 차르르' 서해의 소리가 동쪽 끝에서 그리웠다. 백령도 기억을 곱씹으며 끝없이 걸었다.


비 내리는 바다에서 검은 물 짓의 해녀가 건져온 소라 4개를 먹었. 해녀 체험을 하고 싶었고, 바다 안에서 멋대로 놀고 싶었다. 걷는 일이 문득 팍팍해졌다.

두루뭉술 몽돌, 덤프트럭이 툭툭 흘리고 간 듯 산만하게 흩어진 검은 바위들, 그럭저럭 벽화, 살찐 돼지의 느끼한 속살이 연상되는 바위들이 방어진항에서 울산 대왕암까지의 풍경이었다. 바다가 비릿했다. 


해파랑길 어디쯤에서 빗물을 머금은 동백꽃이 순박하게 고왔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니 바다새들이 검은 바위에 하얀 꽃처럼 내려앉았다. 
겨울비가 잦아들며 눅진하게 뭉친 오존 냄새가 가닥을 풀고 있었다. 바다를 느끼며 산을 생각했다. 존재의 미약함을 언제나 일깨우는 산을.

텁텁하고 떨떨하던 울산에서의 정서가 경주로 이동한 후에 회복되었다. 물과 불과 세월의 협작품. 주상절리를 마주한 탓이었다. 섬세한 손길닿은 듯, 정연한 질서에 반했다. 

해파랑길 자르고 감은사지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남은 빛을 땅으로 내려보낼 즈음이었다.

터만 남은 금당 앞에 천 년의 결연함으로 서 있는 3층 석탑을 우러러 배(拜)를 올렸다. 탑신을 두른 저녁 구름이 차라리 바다보다 장엄했다. 희열과 평화가 내 안으로 스미었다.

                                                        - 2018.12.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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