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마다 사람의 소리가 가득했고. 새소리가따라다녔다. 옛성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오니금불초가 여름빛으로 반짝였다.나비 떼가 살판났다.꽃도, 나비도, 나도, 오늘은 어지러웠다.
아직도 서울 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었다. 가까이 마을이 있고 업다운이 적어 그리 힘들 것 없었으나길의 맛이좀밍밍했다.바람 한 점 없는 날씨 탓이었을까.
아무래도 서울을 두르고 있는 길은 인왕산, 북악산, 남산을 아우르며 성곽을 따라 걷는 한양 도성길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따분하고 슬슬 싫증이 났다.
탕춘대성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연산군의 유배지였던 강화에서 며칠 전에 나눈 역사 이야기를되새김하면서,지나가는사람이 없는 탕춘대성모습을 담으려고 한참을기다렸다.
탕춘대성은서울 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도성과 외곽성(북한산성)의 방어 기능을 보완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탕춘대성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가 지금의 세검정에서 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산봉우리에 있던 것과 관련이 있으며, 한성서쪽에 위치하여 서성으로도 불렀다.
인왕산 동북 쪽에서 시작한 탕춘대성은 북한산 비봉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다.
- 북한산 국립공원사무소 안내판 中에서
작고 볼품없어도 이 땅을 물려준 선조들의 은혜에어깨를 기대니 돌덩이의 온기가 전해졌다.비봉을 바라보며 서대문구와 은평구북한산의 허리와 발치쯤을 밟는 촉감이 폭신했다.
내시부 상약 신공 묘역을 그냥 스쳐 지날 뻔했다. 1600년대 궁중에서 약을 관리했던 이의 무덤 자리였다. 곁의 문인석은 조아리며 살아야 했던 삶의 형상화일까. 문득 서러웠다.
불광동 방향에서 오르는 능선을 따라 족두리봉, 사모바위, 문수봉, 향로봉, 비봉이 나란히 이어졌다. 사랑콧에서 히말라야 연봉을 외우던 열의로 북한산 연봉을 외웠으나이내 자동 삭제되었다.산봉우리 인식 장애인지 그 봉우리가 그 봉우리인 듯 잘 기억되지 않는다.
텐트를 치고 소박하게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숲의 벤치에서 물을 마시고 잠시 초록빛을 즐겼다.
8구간은 나무 데크가 여러 곳이고, 오름과 내림이 반복되고, 2시간 이상 걷는 길이었다.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으로 이어짐에도 왜 그리 자주 끝이 어디냐고 물었던지. 인공적인 길에 좀 식상했다.
2014학년도 2차 지필평가(기말고사의 경기도도교육청 명칭) 기간이었다. 오후에 조퇴를 상신하고 나간 부장단 회식이 북한산 계곡 위의 나무 평상 위에서 있었다. 족구장에서 남자 직원들은 족구를 했고, 개고기와 닭고기를 안주 삼아 젓가락 두드리는 향연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계곡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노랫가락에 어우러졌다.그곳을 연신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마실길답게 걷자며 들어선 9 구간 마실길 입구에서 고기 냄새가 촉을 자극했다. 계곡을 따라 길게 펼쳐진 평상 위에사람들이 빈틈없이 자리를메웠다. 단체 식사였다.
왠지 눈길이 자꾸만 가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며 길을 빠져나왔다. 그곳을 지나오니 눈에 익은 족구장이 나타났다.
2014년의 여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흑역사를열었던시간은 흘러갔건만 기억을 상기시키는 공간과해후했다.
생채기가 덜 지워졌나 보다. 진정한 토닥임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 거듭거듭 잠을 잤다. 잠에서 깰 때마다 헹굼처럼 정서의 땟물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