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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an 31. 2023

안반과 싸리나무발

내가 간직한 시어른들의 유물





음식을 잘하시고 진심이신 시어머니와 서툰 며느리의 이야기를 쓴 좋아하는 어느 작가님의  음식이야기를 읽다 보니 불현듯 겹쳐지는 얼굴이 있다. 부엌일에는 영 서툴고 책 보기 좋아하고 일없이 이곳저곳 혼자 산책하기 좋아하는 이상한 며느리, 나다.


결혼 후 큰 아이가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어 방학이 아주 짧게 주어지기 전까지 십여 년을 시댁으로 가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지금 같으면 강력하게 싫다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젊은 시절 나는 비교적 순순히 남편의 말을 따랐던 듯하다.

시골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온갖 음식으로 우리를 챙겨주셨다. 더위와 아랑곳없이 좋으신 솜씨를 발휘하여 겹침이 없는 식단으로 푸짐한 식탁을 차려 주셨는데, 솜씨 없는 아내의 요리에 목말랐던지 남편은 늘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정말 맛있게 밥을 먹곤 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머쓱해져서 조금은 서운한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어쩌랴 그건 사실에 기초한 것이었기에 그저 웃고 말았다.

하지만 수없이 해주신 그 많은 음식은 그다지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내게는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 초식성인 나에게 딱 맞는 깻잎 김치라던가 당귀무침 산나물무침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어머님이 하시는 음식을  많이 먹은 터라 배우고자 해서 흉내를 내기는 한다.


결혼 초기, 앓고 난 뒤 영 입맛이 없어하는 남편에게 무얼 먹고 싶으냐 물었더니 집에서 만든 손칼국수 란다(아이고 그 손 많이 가는 걸). 육아휴직 중이던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힘들게 엄마의 옛 기억을 더듬어 가며 칼국수를 만들었다. 손칼국수 하면 생각나는 넓고 둥근 상위에서 점차 둥글게 펼쳐지고 접히고, 다시 밀면서 더욱 크고 얇게 만들어지던 국수 반죽을, 착착 접어서 마치 기계처럼 썰어내던 국수가닥과 그 끄트머리 반죽을 얼른 집어 들고 불 위에 구워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각해 내면서. 하지만 작은 도마 위에서 제빵용 작은 밀대로 국수반죽을 미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군분투 끝에  멸치육수에 애호박과 감자를 넣어 끓인 칼국수를 의기양양하게 남편 앞에 디밀었다. 비주얼은 그럴 듯 한지 좋아하면서 한술 뜬 남편의 반응은 이게 아닌데 라는 얼굴이다. 이어지는 말.

"콩가루 안 넣었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경상도 북부 출신이신 어머니는 콩가루를 넣어 칼국수를 만드셨었고 입맛이 없던 남편은 그게 먹고 싶었던 거였다.


휴가차 시댁에 머물던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시며 어머니가 바로 그 칼국수를 만드셨다. 넓은 안반 위에서 현란한 손놀림을 따라 반죽이 펼쳐지고 마치 파는 국수면 마냥 가지런하게 만들어 놓은 국수면이 하얀 밀가루 화장을 옅게 하고 그림처럼  예쁜 자태를 뽐냈다. 어머니는 시골집 조선간장에 풋고추와 홍고추를 썰어 넣어 갖은양념에 간장을 만들어 두시고는 펄펄 끓는 육수에 훌훌 면을 넣으셨다. 그렇게 감자와 애호박을 곱게 채쳐 넣으셔서 만든 그야말로 시골집 손칼국수를 내어 오셨다. 항상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만을 해주시는 것이 조금 미안하셨던지 어머니는 내게 "야야 니도 칼국수 마이 좋아 하제?" 하시며 국수를 양껏 담은 큰 그릇을 내미셨다.  한 수저를 입에 떠 넣으니 구수한 콩가루 향이 밴 국물과 부드럽게 툭툭 끊어지는 면이 예전 남편의 표정을 떠올리게 했고 그제야 그의 반응이 수긍이 간다. 그날 나도 남편도 두어 그릇 뚝딱 참 맛나게도 먹는데 어머니 음식에 목말라하는 그 먹는 입이 그날은 밉지 않았다. 입 짧은 내게도 꿀맛 같았으므로.


결혼한 지 34년이 되던 해 금슬 좋았던 두 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 개월 차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떠나실 거라고는 생각도 않은 채 더 좋아질 것을 기대하며 수술을 받다가 떠나신 어머니 그리고 먼저 아내를 보내고 못해준 것들을 못내 아쉬워하고 그리워하시던 아버님도 그 뒤를 따르셨다. 지금은 남편이 살고 있는 두 분의  집에서 남기신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긴 세월 함께한 시어른들과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떠나는 날을 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아끼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그릇이며 옷가지 등속을 한편으로 쌓아가며 나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참 많았다. 두 분 생전에 '저는 이것 배우고 싶어요 말씀드렸던 것, 은퇴해서 같이 살면 가르쳐 주셔요' 했던 것은 어머니의 막걸리와 아버님의 싸리나무발 만들기였고(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옛것이 좋은 나인지라) 흔쾌히 그러마 답을 들었지만 은퇴하던 그 해에 어머니의 병환으로 결국은 배우지 못한 채 두 분은 떠나셨다.

아끼시던 아버님 은퇴 기념으로 받은 황금열쇠는 가까이서 두 분을 많이 챙겨준 동생에게 건네고, 결혼해서 큰맘 먹고 배 타는 이에게서 직접 거금 들여서 아버님께 사드렸던 악어가죽 코트는 탐내던 다른 시동생에게 손질해 건네고, 늘 아버님이 애용하시던 옛 손길로 잘 만든 두루마기는 남편이 챙겼다. 그 옷을 걸치니 참 좋아했던 시아버님을 많이 닮은 남편의 모습이 더 아버님을 더 생각나게 했다.


어른들이 남기신 물건 중에 내가 챙긴 것은 어머님이 아껴 남기신 그릇도 패물도 옷도 아닌 안반과 홍두깨, 그리고 아버님의 싸리나무 발이었다.

중학생 시절 흐릿한 기억 속의 소설 한 편이 떠오른다. 시골에 잠시 가신 어머니,

 갑작스레 밀려오는 북한군, 전쟁으로 서울을 떠나 어머니를 찾아가는 주인공이 동생들을 데리고 떠날 때, 백조처럼 춤추는 꿈을 꾸었던 주인공은 어머니의 좋은 물건들 중 날개 같은 백조의 옷을 만드는 천 조젯 한필을 메고 어머니가 계신 곳을 찾아간다. 끌끌 혀를 끌끌 차는 어머니 그리고 푸릇한 쌀알이 몇 개 없는 호박잎국...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류작가의 소설.


소설속 그녀의 조젯 한 필을 닮은 나의 선택.

참 엉뚱한 나의 선택지다.




아직도 나는 시골에 정착하지 못했다. 봄이 되면 일을 하러 시골과 도시를 오르내리는 나는 소소한 꿈을 지니고 산다. 일은 조금 적게. 작은 행복을 누리는 느린 삶. 그런 나이기에 두 분의 물건 중에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때론 남편에게 어머니의 맛을 닮은 칼국수를 해 주고 싶은 마음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중하게 지니고 싶은 것일 게다. 봄이면 귀중한 산나물을 널어 말리시던 싸리나무발 위에 시골 장에서 산 나물이거나 우리 하우스에서 난 산나물 이거나 따사한 봄볕에 말리며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싶음이다. 그 나물을 소중한 이들에게 정성스레 손질해 전하며 정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탓이다.

'샛별이(나)는 복도 많지' 삼십사 년 긴 시간 동안 어설픈 며느리를 묵묵히 사랑해 주신 시어른들의 손때 묻은 물건에 담긴 정이 문득문득 나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사랑 그 자체인 탓이다.


그렇게 떠나신 이의 물건들은 하나씩 둘씩 버려지거나 간직되지만, 돌아보면 내가 지닌 것 또한 떠날 때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끔은 내가 소중하게 지니고 있는 물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안다.

버려야지.,. 홀가분해져야 하는데... 중얼대면서

그래도 아직 나는 많은 것들을 지고 산다.

그중에 내 가슴께 까지 오는 큰 안반과 홍두깨,  부드러운 색감을 지닌 싸리나무발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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