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초록
식물은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화분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었다. 아직 봄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던 1월 중순에 히아신스가 베란다에서 월동을 끝내고 얼굴을 내밀었다. 개화시기는 한참 멀었을 텐데 이렇게 꽃을 피운 녀석이 안쓰러운 마음에 거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너무나도 추운 겨울이었지만, 봄은 가까이 있었다.
십 년 가까이 혼자 자취를 했다. 식물을 좋아했지만, 잘 키우지는 못했다. 베란다가 없는 집에서 살다 보니, 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식물은 일조량과 통풍이 가장 중요했다. 그나마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서는 식물을 키워도 된다. 그런데 쉽게 통풍을 할 수 없는 공간에서 식물을 잘 키운다는 것은 고수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결혼 후에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식물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음을 알았다. 수형이 예쁘다는 이유로 거실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 비해 비실거렸다. 물론 베란다가 있다고 해서 모든 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모든 식물을 잘 키울 수는 없다.
나는 베란다 한 편에 다양한 식물을 넘치도록 키우고 있다. 베란다 안쪽으로 스타벅스에서 프리퀀시를 다 모아 선물로 받은 작은 간이 의자가 그 틈을 비집고 놓여 있는데, 그 작은 공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햇살 좋은 날, 간이 의자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면 정말 힐링이 된다. 내가 만들어 놓은 나만의 숲에서 식물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내겐 하나, 하나 소중한 자식과도 같은 존재라 어디라도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때, 너와 내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