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우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봉긋한 꽃봉오리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몰래 감탄하게 된다. 매년 봄이 오면 형형 색색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가느다란 줄기에 비해 꽃이 커서, 바람이 불면 부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태를 보이기도 한다. 잎사귀는 꽃봉오리와 줄기를 감싸는 형태로 뻗어 오른다. 마치 아가씨를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온몸으로 꽃을 보호하는 느낌이다. 튤립의 구근은 마치 작은 양파처럼 생겼다. 가장 바깥쪽을 감싸는 갈색빛의 얇은 한 겹을 벗겨내고 나면,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양파처럼 매끈하지는 않지만, 뽀얀 맛은 튤립 구근이 우세하다.
해를 보면 꽃잎을 활짝 편다. 튤립을 떠올리면 늘 입을 다물고 있어 봉긋한 꽃 모양을 상상하게 되는데, 또 다른 이미지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 호기심이 발동해 언제까지 입을 벌리고 있을지 관찰하게 된다. 해 질 녘이면, 조금씩 입을 오므리기 시작한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침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백합과의 식물로 맹독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가까이 가지 않게 해야 한단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사가 이런 상식을 이제야 알았다니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무작정 손을 뻗을 것이 아니라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꽃은 개화 후 10일 정도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다가 어느 순간 입을 다무는 법을 잊어버리고 꽃잎에 힘이 다 빠져서 바닥으로 한 장씩 떨어지고 만다. 영원할 줄 알았던 아름다움은 어느새 차가운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말라가는 신세가 된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 이틀은 꽃잎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 같은 날 심었지만, 성장 속도도 개화시기도 모두 다르기에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한 달 넘게 마음껏 튤립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긴다.
조금만 바지런을 떨면 베란다는 아름다운 봄꽃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계획성이 부족하고 즉흥적인 나는, 스스로 쑥쑥 자라주는 식물을 바라보며, 도둑 심보로 꽃까지 피워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나는 게을러서 어떤 일이 생기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두었다가 급하게 처리하는 유형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튤립은 차가운 흙 속에서도 싹을 틔우고 매일 조금씩 자라더니, 결국 꽃까지 피워냈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화려한 색채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노지에 심었다면 더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뿌리를 내리며 영양분을 흡수했을 텐데, 너무 좁은 공간에 뿌리내리게 한 게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화분이 부족해 일회용 커피 컵에도 구근을 심었는데, 너무나도 훌륭하게 자라주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