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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Apr 08. 2024

오동통한 네가 좋아

만세선인장(로드킬선인장)



한참 선인장에 관심을 갖던 시기가 있었다.

집 안 인테리어로 선인장을 두면 이국적인 느낌이 날 것 같아서 크기가 큰 선인장을 들여오고 싶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식물 키우는데 초보라, 큰 사이즈를 가져올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70cm 가까이 되는 선인장 화분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것으로 나 자신과 타협했다. 그렇게 가족이 된 식물은 두 팔을 벌려 만세를 하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세선인장, 타이어 바퀴가 지나간 모습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로드킬선인장이라고도 불린다. 


ⓒ hyo. 우리 집 만세선인장



풍수지리에 따르면, 집 안에 선인장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선인장의 가시가 공격성이 있기 때문에 나쁜 기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인장은 집 안이 아니라 문 밖이나 입구에 둬야 나쁜 기운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선인장이 네 종류가 있는데, 가시가 없는 두 가지의 종류만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풍수지리설을 염두한 것은 아니고, 가시가 있는 선인장이 위험할 수 있어서 베란다에 둔 것인데, 만세선인장은 가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선인장에 비해 가시가 없다. 외형만 귀여운 것이 아니라, 성격까지 좋은 셈이다. 



ⓒ hyo. 우리 집 만세선인장



선인장은 정말 초보자라도 쉽게 키울 수 있다. 언제 물을 줬는지도 잃어버릴 정도로 오랜 시간 식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혼자 잘 자란다. 그래도 만세선인장은 다른 선인장에 비해 물을 많이 먹는 것 같다. 일상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이 식물이 물을 필요로 할 때는 온몸이 쪼글쪼글 해질 때다. 



ⓒ hyo. 우리 집 만세선인장



온몸으로 소리쳐서 물을 달라고 외치고 있으니, 그럴 때마다 물을 흠뻑 주면 금세 오동통한 몸으로 돌아온다. 물을 주고 나서 보는 선인장의 통통한 몸을 좋아한다.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특히 만세선인장은 로드킬이라는 이름처럼, 볼륨이 없는 몸매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이런 종잇장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키를 버텨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선인장은 하늘 높이 쑥쑥 자라고 귀여운 팔을 하나씩 또 뻗어 낸다. 



ⓒ hyo. 우리 집 만세선인장



생육온도가 10~30도라 겨울철에는 베란다에도 잘 내놓지 않는다. 안방에 볕이 잘 들어오는 곳에 두고 별 관심을 주지 않고 있지만, 어느새 키가 자라 있으면 애잔한 느낌도 든다. 붉은색이나 노란색 꽃도 핀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도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 hyo. 우리 집 만세선인장


ⓒ hyo. 우리 집 만세선인장



물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굴곡이 생긴 우리 집 만세선인장을 보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결혼하고 10킬로 넘게 살이 쪘는데, 내겐 너무나도 스트레스지만, 남편은 그 모습이 더 보기 좋단다. 헨젤과 그래텔의 마녀 할머니처럼 나를 살찌워 잡아먹으려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선인장을 바라보는 내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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