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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Apr 02. 2024

당신에게 필요한 건 여유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식물을 좋아하는 부류는 대부분 여유가 있다.

급한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자신이 키우는 식물을 위해 시간을 낸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여유'는 마음적인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스파라거스 나누스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새파란 이파리가 어찌나 아름답게 뻗어 있던지, 나는 이 식물을 집에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나는 식물을 구입하고 결제를 하는 도중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녀에게도 식물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생각이 앞섰다. 나 같은 사람이면 식물 선물에 고마움을 느낄 텐데, 분명 아닌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식물 있어요?"

그녀는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지 살짝 당황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글세, 소나무?"



"소나무 말고요. 사무실에 둘 수 있는 것도 좋고..."

"글세... 잘..."

"알았어요. 곧 갈게요."



그녀에게 식물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는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만 사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 hyo. 우리 집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식물은 화분의 무게 때문인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녀는 내가 들고 온 화분에 관심을 보였다.


"독특하게 생겼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예요. 수형이 참 멋있죠?"


"그러네, 근데 안 무거워?"


"생각보다 좀 무겁네요. 근데 괜찮아요. 밥 먹고 바로 집으로 갈 거라서."


"나는 오늘도 컨디션이 별로네..."





그녀는 어제도 밤을 새웠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리 일이 좋다고 해도 건강이 우선이라고 판에 박힌 말을 했다. 그렇지만 사실이었다. 그녀는 일 중독에 가까웠다.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했다.





ⓒ hyo. 우리 집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늘 쫓기듯 하루를 보냈다. 그녀의 하루 일과를 듣고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그녀에게는 성공을 향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도 단기간에 회사를 몇 배는 더 성장시켜야 했다. 그래서인지 웃고 있어도 어딘가 한 구석은 불편해 보였다. 앉아서 일만 한 탓인지, 밤새 일하느라 생체 리듬이 무너져서인지, 늘 음식을 밖에서만 사 먹어서 인지 그녀의 건강은 적신호가 켜진 듯했다. 갑자기 몸무게가 20kg 이상 불어난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식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 시급해 보였다.




ⓒ hyo. 우리 집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를 집에 데리고 와서 내가 늘 일하는 탁자 앞에 두었다. 수형이 멋있어서인지, 어디 두어도 참 잘 어울렸다. 나는 관심이 많은 만큼, 자주 들여다 보고, 자주 물을 줬다. 잎이 더 푸릇해지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잎이 노랗게 변했다. 처음에는 노란색과 초록색이 함께 공존해 있어서 더 멋있어 보였다. 단풍나무에 단풍이 든 것처럼 꽤 멋있는 자태였다. 그런데 노란색으로 변한 잎들은 손가락이 스치기만 해도 우수수 떨어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마른 가지는 모조리 잘라 주었다.


가지를 치기 전에는 길게 늘어뜨린 이파리가 정말 멋있었는데, 아무렇게나 잘라내다 보니, 멋은 좀 잃어버렸다. 그래도 남아있는 초록색 이파리라도 잘 보호해야 했다. 식물을 먼저 키운 선배에게 물었더니, 과습이나 고온이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내가 잘 돌보지 못했나 싶어, 미안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온다.



ⓒ hyo. 우리 집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 hyo. 우리 집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는 반음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이다. 앞서 잎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의 잎은 없다고 한다.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 증발이 빠른 넓은 잎이 퇴화하고, 나뭇가지가 잎모양으로 변형되어 생긴 가짜 잎이라고.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라 평균적으로 주 1~2회 물을 주라고 하는데, 과습은 또 싫어한다니 어쩌란 말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환기일까? 가지 끝 주면에 분무를 해 주는 것이 좋고, 15도~25도 사이의 온도를 좋아한다고 하니, 신경 써서 돌봐야겠다.



누구나 삶의 가치를 어느 곳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나도 가끔 누군가, 무엇인가를 돌보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무언가를 돌볼 수 없는 삶은 너무 쓸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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