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카스 움베르타
여름이 가까이 있다.
작년 이맘 때는 긴팔 스웨트 셔츠(sweat shirt)를 입고 강아지 산책을 나갔었다.
그런데 요즘은 더운 느낌이 있어 얇은 셔츠를 꺼내 입게 된다. 모자나 선글라스도 필수품이 되었다. 아직 4월인데, 이미 여름이 왔다고 손짓하는 듯하다.
나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계절부터 시작해 무더워지는 여름을 좋아한다. 수영이나 물놀이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시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에 새순이 돋고, 손톱만 했던 잎사귀가 손바닥만큼 커지는 것을 보는 것이 마냥 즐겁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은 마치 공작새의 화려한 날갯짓처럼, 식물들이 마음껏 자신의 날개를 펼쳐 보이는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여름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우리 집 식물에게 ‘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식물에 이름을 붙인 건 처음이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이름을 붙여주면 오래오래 산다던데 여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휘카스 움베르타는 여름이면 무성하게 잎사귀를 펼쳐 보인다. 추운 계절에는 잎을 거의 다 떨궈내고, 겨우 한 두장만 잎사귀가 붙어 있는데, 보는 사람도 아슬아슬하게 만들 만큼 비실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이맘때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성하게 잎사귀를 매단다.
휘카스 움베르타의 잎이 무성해질 쯤이면, 여름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올해도 여름이는 초록의 잎사귀를 머리에 채워 미모를 뽐낸다. 싱그러운 여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벌써 무더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서큘레이터라도 돌려줘야 하나.
휘카스 움베르타 줄기 꼭대기 부분 중앙에 둥근 삼각뿔 모양으로 올라온 것이, 잎사귀를 담은 주머니다. 날이 좋으면, 하루 이틀 만에도 싱그러운 초록의 빛깔을 보이며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이 식물을 키울 때 더 이상 키를 크게 하고 싶지 않다면 삼각뿔 모양 부분을 제거하면 된다. 생장점을 잘라주는 것인데, 그 부분이 잘려나가면 자연스럽게 식물은 옆으로 가지를 뻗게 된다. 휘카스 움베르타를 풍성하게 키우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저 싱그러운 생명의 생장점을 자르는 일이 싫어서 그냥 위로 자라게 두고 있다. 이러다가 언젠간 베란다 천장까지 닿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여름이를 볼 때마다 싱그러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측은하기도 하다. 새 잎이 올라오면 오래된 잎은 노랗게 바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신세가 된다. 마치 인생의 사이클처럼 돌고 돈다.
처음 여름이를 데려 왔을 때는 승용차 뒷좌석에 조심스럽게 실어 왔는데,
지금은 키가 너무 커서 승용차에 실을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여름아, 너와 함께 맞이하는 네 번째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 올여름도 싱그러운 모습 많이 보여줄 거지? 나는 니 옆에 책 한 권 끼고 앉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