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초
신입생이 들어왔다.
올망졸망한 모습이 아이같기도 하고, 흰색과 초록색의 조화가 선명해 당차 보이기도 한 이 식물의 이름은 안개꽃이다. 지금부터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당분간 나는 안개꽃의 매력에 빠져 베란다에 나가는 시간이 즐거울 것이다.
집 앞에 잘 가는 단골 카페가 있다. 카페 사장님 어머니가 꽃을 좋아해 카페 앞에는 늘 제철 꽃들이 심어진 화분이 먼저 손님을 반긴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봄은,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은 따사롭게 사랑스러울 정도로만 땅을 향해 비춘다. 그날은 남편과 강아지, 우리 세 식구가 카페테라스와 같은 공간에 앉아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은 흰꽃이 핀 화분에 눈길이 갔다. 몇 송이인지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꽃이 예뻐 보여 사장님 어머니께 물었다.
"무슨 꽃이에요?"
"안개꽃이요."
내가 알던 안개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안개꽃은 절화로 사용되는 꽃다발을 만드는 꽃만 봤었다. 의아한 표정을 읽은 어머니는 살며시 꽃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개초라고 우리가 아는 안개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남편은 베란다에 식물이 넘쳐나는 것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다.
일단 물건이 많은 것 자체로 숨 막혀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식물도 적당히 키우기를 바란다. 그래서 늘 식물을 들이려는 나를 제지하곤 하는데, 안개초만큼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꽃이 너무 예쁘네. 우리도 하나 사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그래!"
나는 좋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하다가 동네 꽃집에 가보기로 했다.
찾는 사람이 많은지, 제철을 맞은 안개초는 누구라도 얼른 자신들을 데려가기 바라는 것처럼 손을 뻗어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 포트에 오천 원. 나는 두 포트를 사들고 집에 왔다.
꽃집 사장님은 물을 좋아하는 아이라면서 물 많이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꽃을 사 오면 대부분은 바로 분갈이를 해준다. 대부분은 식물의 몸집에 비해 포트가 작기 때문에,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살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포트를 뒤집어 식물을 꺼내보면, 뿌리가 한가득 포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얼마나 더 뻗어나가고 싶었을까...
예전 같았다면 화분에 식물을 옮겨 심을 때 포트 안의 흙을 털지 않고 그대로 새 화분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분갈이를 시도했다간 식물은 시들시들 앓다가 죽고 만다.
몇 번의 경험을 거친 끝에, 흙을 털고 잔뿌리를 조금 정리해서 화분에 옮겨 심어야 식물들이 쉽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나는 안개초가 더 넓은 공간에서 마음 놓고 뿌리를 뻗을 수 있게 서로 얽혀 있는 잔뿌리를 떼어내고, 흙도 털어냈다.
새로운 집을 찾은 식물은 처음보다 더 건강하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자라는 중이다.
분갈이를 한 다음에는 흙이 많아서인지 꽃집 사장님의 당부처럼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활기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 초보 식집사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인가?
해가 잘 드는 곳,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면 좋고, 분무기로 안개 분사를 해 주면 좋아한다고 하니, 생각날 때마다 물을 뿌려주고 있다.
꽃잎이 작아서 그런지 화려한 맛은 없지만, 소박한 모습이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했던, 사람의 향기가 좋았던, 단순했던 그 시절.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살게 해 준 정겨웠던 내 고향이 떠오른다. 아직 그 뒷산은 그대로 있을까? 보물창고 같았던 공간에서 비밀기지를 만든다고 나뭇가지를 모아다 작은 우리의 공간을 만들었었지. 봄이면 바구니 한 가득 쑥을 캐와서 엄마에게 쑥국을 끓여달라고 하면, 엄마는 어디서 이렇게 많은 쑥을 캐왔냐며 놀라곤 했었지. 난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엄마보다도 쑥캐는 걸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였던 것 같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작지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안개초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식물에겐 그런 요상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