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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May 13. 2024

매우 더디게 성장하는 그대에게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무늬식물, 희귀 식물, 돌연변이식물.

평범하지 않은 다른 모습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다. 반려식물 집사라면 한 두 아이쯤 집에 데려 놓았을 무늬식물. 한 때 너무 높은 가격에 거래된 적 있는 '몬스테라 알보'는 각종 매체에 소개되며 식집사의 재테크 식물로도 인기가 있었다. 식물의 가격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가에 형성돼 어떤 이는 그런 현상을 불편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늬식물이 나는 궁금했다. 우리 집에 와서도 잘 자라줄까?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지난해 9월 우리 집에 온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Philodendron Burle marx Variegated)'. 무늬가 있는 필로덴드론 종으로 난이도가 높지 않아 초보 식집사도 무리 없이 잘 키울 수 있다. 우리 집 버럴막스는 양쪽으로 팔을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마치 시곗바늘 같은 느낌을 준다. 최근에 둥글게 말린 새로운 싹이 올라왔는데, 아직 이파리가 다 펴지지 않았다. 


집에 데려와서는 5개월 정도 작은 플라스틱 포트에서 지내다가 지난 2월에 분갈이를 해줬다. 생각보다 성장이 더디고, 새싹이 올라와도 펴지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더 빨리 쑥쑥 자라주면 좋으련만, 이제 겨우 세 가닥의 잎사귀뿐이라 소중하게 다뤄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무늬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애초에 잎에 퍼진 독특한 무늬를 보고 싶어 하기에 어떤 잎이 나와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먼저 나온 잎들이 무늬가 있다고 해도, 다음에 나오는 잎에 무늬가 있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다. 초록잎이 무늬 없이 나오기도 하고, 잎이 하얗게만 나오기도 한다. 햐얀색 잎이 나오면 '고스트'라고 한다.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지금 나오는 잎은 무늬가 있다. 무늬식물을 구매할 땐, 잎이 3~4장 정도 나온 것을 고르란 말이 있다. 아무래도 그 정도는 잎의 무늬를 확인해야 안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무늬가 나오든 안 나오든 건강하게만 잘 살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잎사귀가 나오면서 무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우리는 특별함 앞에서 욕심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자라는 것보다는, 평범한 초록색 잎으로만 가득채워져도 좋다. 그래서 올여름에는 풍성하고 건강하게 더 많은 잎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면, 아이는 성장이 더디다.

부모는 어쩌면 영원히 아이가 아이인 채로 자라지 않고 본인들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아이는 부모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기댄다. 어디를 나가도 귀하게 자란 티가 나긴 하지만, 독립심이 길러지거나 잡초러럼 억센 힘을 가질 순 없다. 버럴막스의 성장이 더딘 것은, 아니, 더디게 느껴진 것은, 내가 너무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인 걸까? 잎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얼마나 평평하게 펴졌는지 신경 쓰다 보니, 조바심으로 더디게 자라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무늬식물을 키울 때 가장 이사적인 장소는 반양지다. 빛이 없는 곳에 두면 무늬가 사라질 수 있고, 그렇다고 빛이 센 장소에서는 잎이 탈 수 있다. 무늬식물은 어떻게 보면, 까칠할 수도 있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겨울철에는 베란다에서 월동하지 못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빛이 잘 드는 거실에 두는 것이 좋다. 그래도 습도는 잘 유지해줘야 한다. 물을 좋아하는만큼, 분무기로 잎에 물을 자주 뿌려주면 좋다. 습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잎에 있는 흰색 얼룩이 갈색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 hyo. 우리 집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



무언가를 돌보는 시간은 즐거움을 주지만,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하루는 짧고, 일주일은 더 짧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그래도 식물이 있어 나의 시간의 더 의미있고 가치있게 쓰여진다. 나는 사람을 돌보는 일에는 꽝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식물에게만큼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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