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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May 27. 2024

내 마음도 동그랗게

필레아페페



눈물이 많아졌다.

늙어서 그런 건지, 작년만큼 바쁜 생활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생각이 자꾸 말랑말랑해진다. 지금의 삶이 불안한데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채찍질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잔소리에 더 적극적으로 반문했던 것도, 사실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이 나이에 내가 누구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 난 나름대로 열심히,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데 말이다. 


소외된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애잔함이 눈물샘을 자꾸 건드린다. 어제는 SBS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를 보며 펑펑 울었고, 오늘은 KBS 다큐인사이트 <고양이 소녀>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의 삶은 인간과 비교되지 못할 만큼 가엽고 또 가여웠다. 그들도 똑같이 한 생명을 얻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오염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이도 모자라 자유를 박탈당한 채 수족관에서 갇혀 평생을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는 고래의 삶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전쟁터 같은 길고양이의 삶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지할 곳 없이 버려진 두 마리의 고양이가 서로 곁을 내주며 잠드는 마지막 모습에서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터져 흘렀다. 


이토록 눈물이 나는 날에는 베란다로 나간다. 


ⓒ hyo. 우리 집 베란다 식물


ⓒ hyo. 우리 집 베란다 식물



잠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베란다에서 식물을 들여다보면, 꽤 오랫동안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두가 같은 초록인 것 같아도, 똑같은 색감은 하나도 없는 초록의 식물이 서로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물분무를 좋아하는 관엽식물이나 고사리과식물에게는 생각나는 대로 가서 물을 뿌려준다.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해주지 못했을 것들이다. 사실 직장인에게는 동물을 키우는 것과 식물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 돌봄은 시간이 날 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 때때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 제때 손길을 주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며칠 전에는 무더워지는 여름철을 대비하기 위해 온습도계를 사서 베란다에 두었다. 여름철 높은 습도와 온도가 식물에게도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다. 시간이 나는 대로 서큘레이터를 돌려주면서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한참 식물을 들여다보다가 필레아페페를 보고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식물이지만, 예전부터 페페를 키워보고 싶었다. 수박페페를 키울까 아니면 가장 기본적인 필레아페페를 키울까 고민하다가 필레아페페를 데려왔다. 잎이 동그란 것이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이나 물양귀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페페는 수경재배를 해도 좋다고 한다. 아직은 목대가 길게 올라오지는 않아서 작은 사이즈에 불과하지만, 비교적 초보집사에게도 순둥순둥하게 군다고 하니까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필레아페페는 햇볕을 받는 방향 쪽으로 수형이 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화분을 자주 돌려주면서 키우는 것도 좋다. 중국 윈난 지방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생김새 때문인지 '돈나무'로도 불린다. 재물운을 올려준다고 하니, 선물용으로도 좋을 듯하다. 꽃말은 행운과 행운이 함께하는 사랑이다. 필레아페페를 보고 왜 웃음이 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나지 않은 동그란 형태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동글동글한 잎모양이 아이처럼 귀엽게 느껴진다. 잎도 많아서 율동감 있게 느껴지고,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그만큼 매력 있는 식물이라는 것.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나는 어떤 조직에 포함되면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눈치를 봐 가면서 정도껏, 수용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가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소심하고 꽉 막힌 유형이 있다. 무조건 매뉴얼에 있는 대로 해야 성에 차는 사람들과 나는 맞지 않는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호되게 받았을지도 모른다. 


10년 전쯤, 제약회사 홍보팀 면접에 간 적이 있다. 경력직을 뽑고 있었는데, 지원자 셋, 면접관 셋 이렇게 면접이 진행되었다. 하필 내가 첫 번째 자리에 앉아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먼저 시작해야 했다. 면접관은 내게 아무런 표정 없이 물었다.


"우리 회사는 군대식 문화예요. 이전까지 기자생활을 했다면 취재 후에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았을 텐데 맞죠? 우리 회사에 입사한다면 취재(사보)를 나가더라도 무조건 회사로 들어와야 합니다. 가능하겠어요?"


질문자체부터 이상했다. 어쩌라는 건가... 무조건 적인 명령에 복종하라는 건가. 나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주지 못했다. 군대식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난 자율성을 주는 회사가 좋다는 반대되는 대답으로 질문자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왜 그 자리에서 그런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갑자기 드라마 <비밀은 없어>의 송기백 아나운서가 된 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온순하고 동글동글한, 그냥 어디에 두어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어도 잘 어우러지는 필레아페페와 같은 얼굴을 갖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도 동그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서로 상처 주지 않고 공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친절하게 대하기'란 글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공감된다. 


친절하게 상대를 대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 마음과 맞지 않다고 삐뚤어진 사람과는 더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때문인지, 이렇게 밀어내다 보면 내 주변엔 아무도 남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동글동글한 사람만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이제 나도 필레아페페처럼 동글동글한 얼굴과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행운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 hyo. 우리 집 필레아페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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