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바람을 타고 날아온 단풍나무 씨앗이 보슬보슬한 흙 위로 날아들었다. 주변에는 같은 종족 하나 없고, 보살펴 줄 이 조차 없는 텅 빈 공간에 홀로 날아든 씨앗은 자연스럽게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게 마치 내 모습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살포시 줄기를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아직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 쉽게 뽑혔다. 차라리 그대로 둘 걸 그랬나, 순간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이 식물의 삶이 무너져 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밀려왔다. 오히려 넓은 공간에서 햇볕과 바람을 맞고, 맛있는 빗물로 쑥쑥 자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쓸쓸해 보이는 건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잘 살아보겠다고 땅에 자리 잡은 식물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그의 운명을 바꾸려 했을까.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잘 커주기를 바랄 수밖에. 나중에 주택으로 이사 가면 그때 꼭 마당에 심어줄게. 그렇게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집에 있던 빈 화분이 단풍나무가 머물 자리였다. 지금의 몸집보다 훨씬 큰 화분이지만, 영양분을 많이 먹고 쑥쑥 자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에 이 화분으로 선택했다.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연약한 외목대의 작은 나무는 나를 늘 긴장하게 했다.
볕이 너무 강해 비실거리지 말라고 베란다 큰 나무 아래 자리를 마련했던 나는 단풍나무가 일단 이 화분에 잘 정착해 주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내 걱정이 무색하게 단풍나무는 연약한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보란 듯이 화분에 정착했다. 건강하게 자리 잡아줘서 고마워.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
누군가 곁에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가끔씩 외로움을 탄다. 나는 스스로 나를 외로움의 방으로 몰아넣는다. 살면서 내 마음을 모두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마음을 충분히 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함께 웃고 떠들지만, 솔메이트는 없는 삶이다.
한때는 지금의 남편이 내 소울메이트인 줄 알았다.
마음이 같은 친구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티키타카가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드디어 내가 평생 그려오던 소울메이트를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부부는 소울메이트가 될 수 없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쉽게 소울메이트가 된다.
부부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는, 그저 연애할 때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만 알았다. 부부는 참을 인(忍)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그려야 완성되는 사이였다.
함께 있는 것은 보기엔 좋지만, 그만큼 뒤집어지는 속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혼자는 보기에는 안타까울 수 있지만, 오히려 더 견고할 수 있다. 홀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내고 있는 단풍나무를 보면서 대견하고 사랑스러운 이유다.
단풍나무의 꽃말은 사양, 은둔, 자제라고 한다.
잘 어울린다.
"사양하겠습니다."
"혼자 있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꽃말까지 외로워 보이는 너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너도 엄마가 있겠지? 엄마의 보살핌도 없이 혼자서 먼 길을 날아서 자리 잡았다가, 내게 발각되어 또 한 번 자리를 옮겼으니, 너도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며 더 열심히 널 지켜줄게.
요즘 말을 아낀다.
지인들에게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괜찮다. 말로 못한 것들은 이렇게 글로 써내면 되니까. 말 많은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라는 한 시인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려 한다. 그러다 외로우면 베란다를 찾으면 될 일이다. 말이 없는 초록이들과 함께 얼음음료 하나 들고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낸다.
마음이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