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스킨답서스
오랜만에 정장스타일의 원피스를 차려입고 외출을 한다.
옷은 단정하게 검은색으로 입고 와달라는 요청에 따라, 블랙 원피스에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렸다. 현관 앞까지 달려 나온 푸디는 슬픈 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엄마 금방 다녀올게, 꿀잠 자고 있어."
에어컨을 무풍모드로 쾌적하게 조절하고 집밖으로 서둘러 나선다. 푸디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작은 거울에 모습을 비춰본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고 만다. 왼쪽 앞머리 부분에 흰머리가 잔뜩 나 있는 것이다. 언뜻 봐도 다섯 가닥은 넘게 보였다.
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흰머리가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사이사이에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묶었던 머리를 풀고, 다시 머리를 최대한 가볍게 낮춰서 묶었다. 흰머리가 드러나지 않게.
늙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몸의 변화가 첫 번째였다.
눈 옆에 주름살이 늘었고, 목에도 주름이 생겼다. 난 높은 베개를 좋아하지 않는 평소 습관 덕분에 목주름 없다고 자부했었는데,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겨울에 로션을 듬뿍 발라주지 않으면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다. 특히 발 뒤꿈치는 사포로 긁어 표면을 정리해야 하는 날 선 나무판처럼 까칠하다. 내 몸을 더 사랑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1년 전 봄에, 대형 마트에 갔다가 조그만 포트에 담긴 스킨답서스 모종 두 개를 사 왔다. 마트에서 파는 스킨답서스는 비좁은 포트에서 햇볕도 보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분갈이 먼저 해 줬다. 수경으로도 키워보고 싶어서 한 뿌리 정도는 흙을 털어내고 씻어서 컵에 담아 두었다. 수경재배를 하는 스킨답서스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장식장 위에 두고, 흙에 심은 스킨답서스는 베란다 해가 잘 드든 곳에 놓았다.
빛을 잘 보지 못한 스킨답서스는 하루하루 무늬를 잃어갔다. 책에서 보니, 햇볕이 부족하면 엽록소가 풍부한 초록잎이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고 볕이 너무 강해도 문제다. 볕이 너무 뜨거우면 잎이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인다. 볕이 적당이 드는 음지에 두는 게 가장 좋은 생육법인가 보다. 그렇지만, 무늬스킨답서스는 비교적 키우는 게 어렵지 않은 식물이다. 물이 부족해 보일 때 물만 잘 주면 쑥쑥 자라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같은 식물인데, 키우는 방식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크는 것을 보니,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파리가 초록색인 수경재배 무늬스킨답서스와, 이파리가 초록과 흰색이 섞인 토양 재배 무늬스킨답서스 중 어떤 것이 더 예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냥 각자의 매력이 있다. 취향 차이, 생각 차이다.
흰머리가 나면 나는 대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서러워할 일도 아니다. 몸의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누구라도 항상 똑같을 순 없다. 가장 재미없는 일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하면서 성장한다.
내 몸만 변화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도 함께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변한다.
오늘도 마음이 한 뼘 더 커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