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 원데이클래스
일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에게 가장 난감한 상황은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막상 시간이 주어지면 머릿속은 깜깜한 어둠이 되고 급기야 고장 난 기계처럼 작동을 멈추고 만다.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내가 계획적인 인간이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P형 인간인 나는 내 의식의 흐름대로,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편이다. 미리 계산하고 정확하게 계획하는 삶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며칠 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가 단돈 29,000원이라는 마케팅 문자였다. 평소 때 같았다면 무시했겠지만, 요즘은 내 시간이 많아졌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아직 몇 자리가 남아 있단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장마철이라 귀찮긴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을 떨어보기로 한다.
취재가 아닌 목적으로 원데이클래스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편하다. 나를 아는 사람도, 신경 써야 할 것도 없다. 그저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그대로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꽃을 꽂는 데는 정답이 없다. 이미 수업에 사용할 꽃은 준비가 되어 있고, 수강생은 꽃의 얼굴이 서로 겹치지 않게 높낮이를 잘 조절하고 비어 있는 공간이 없게 화병에 꽃아 주면 된다. 어려울 것도 없다. 결을 맞춰 준비된 꽃은 어떻게 꽃아도 예쁘기 때문에 기술을 숙련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꽃의 이름을 알고, 꽃을 만지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다.
전문적인 배움을 원한다면 정규반이 따로 있다. 그런데 정규반을 듣기 전에 이렇게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다. 수업을 하는 방식이나 분위기를 먼저 파악할 수 있고 나에게 잘 맞을지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다.
언젠가는 식물을 파는 가게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식물을 가꾸는 시간 내내 즐거워할 것을 알기에,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식물 가게 사장님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열이면 열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잘 어울려.
평소 입고 다니는 스타일이 꽃집의 아가씨를 연상하게 한다나. '그렇다면 이건 내 이미지가 딱딱하지 않고 유하다는 것인데...'라고 혼자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란 것을 큰 복이라 생각한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나무와 꽃, 풀을 친구 삼아 지냈다. 그래서 누군가가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이나 풀에 대해 궁금해하면 내가 아는 선에서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알려주곤 했다. 친구들은 신기해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되물었지만, 나는 그들이 모르는 게 더 신기했다.
식물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사심을 담아 식물에 대한 콘텐츠를 기획한다.
식물 가게를 찾아다니며 많은 사장님들을 만났다. 와중에 신기했던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식물 가게 사장님이 잡지사 에디터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식물 가게를 차렸다. 나는 그들의 결단력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나는 조금 소심한 편이라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늘 조심하고 미루고 나중을 기약한다.
내가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릴 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를 더할수록 무서워지는 것만 커졌다. 게다가 간절함이 부족했다. 꼭 하고 싶다는 그런 간절함이 있어도 어려운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인데, 간절함 자체가 없으니, 내가 말하는 꿈은 그저 몽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물론, 취재를 하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한때 에디터였던 그들은 '용기가 멋있다'는 나의 말에 '잘하고 있는 게 맞겠죠?'라거나 '쉽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물론, '너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해 준 사장님도 있긴 하다. 그는 식물을 키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식물을 뺀 삶에 자신은 없는 것처럼, 그는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식물 가게 사장님이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꽃꽂이를 배우는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잡념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꽃을 정리하고 화병에 꽂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단순하게 그 순간 나는 꽃집(식물 가게) 사장님이 된 것 같았다.
29,000원의 행복. 포장까지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 화병에 담긴 꽃을 소분해 작은 것은 식탁 위에 두고 큰 건 침대 옆 협탁에 두었다.
푸디는 꽃을 보자마자 사뿐사뿐 걸어가 냄새를 맡았다.
전생에 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나 보다.
얼마나 우리 집에 있어줄까.
너를 보면서 난 또 얼마나 오래 설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