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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Jun 25. 2024

넌 어디에서 왔니?

단풍나무




바람을 타고 날아온 단풍나무 씨앗이 보슬보슬한 흙 위로 날아들었다. 주변에는 같은 종족 하나 없고, 보살펴 줄 이 조차 없는 텅 빈 공간에 홀로 날아든 씨앗은 자연스럽게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게 마치 내 모습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살포시 줄기를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아직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 쉽게 뽑혔다. 차라리 그대로 둘 걸 그랬나, 순간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이 식물의 삶이 무너져 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밀려왔다. 오히려 넓은 공간에서 햇볕과 바람을 맞고, 맛있는 빗물로 쑥쑥 자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쓸쓸해 보이는 건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잘 살아보겠다고 땅에 자리 잡은 식물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그의 운명을 바꾸려 했을까.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잘 커주기를 바랄 수밖에. 나중에 주택으로 이사 가면 그때 꼭 마당에 심어줄게. 그렇게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집에 있던 빈 화분이 단풍나무가 머물 자리였다. 지금의 몸집보다 훨씬 큰 화분이지만, 영양분을 많이 먹고 쑥쑥 자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에 이 화분으로 선택했다.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연약한 외목대의 작은 나무는 나를 늘 긴장하게 했다.

볕이 너무 강해 비실거리지 말라고 베란다 큰 나무 아래 자리를 마련했던 나는 단풍나무가 일단 이 화분에 잘 정착해 주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내 걱정이 무색하게 단풍나무는 연약한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보란 듯이 화분에 정착했다. 건강하게 자리 잡아줘서 고마워.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

누군가 곁에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가끔씩 외로움을 탄다. 나는 스스로 나를 외로움의 방으로 몰아넣는다. 살면서 내 마음을 모두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마음을 충분히 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함께 웃고 떠들지만, 솔메이트는 없는 삶이다.



한때는 지금의 남편이 내 소울메이트인 줄 알았다.

마음이 같은 친구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티키타카가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드디어 내가 평생 그려오던 소울메이트를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부부는 소울메이트가 될 수 없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쉽게 소울메이트가 된다.


부부의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는, 그저 연애할 때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만 알았다. 부부는 참을 인(忍)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그려야 완성되는 사이였다.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함께 있는 것은 보기엔 좋지만, 그만큼 뒤집어지는 속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혼자는 보기에는 안타까울 수 있지만, 오히려 더 견고할 수 있다. 홀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내고 있는 단풍나무를 보면서 대견하고 사랑스러운 이유다.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단풍나무의 꽃말은 사양, 은둔, 자제라고 한다.

잘 어울린다.

"사양하겠습니다."

"혼자 있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꽃말까지 외로워 보이는 너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너도 엄마가 있겠지? 엄마의 보살핌도 없이 혼자서 먼 길을 날아서 자리 잡았다가, 내게 발각되어 또 한 번 자리를 옮겼으니, 너도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며 더 열심히 널 지켜줄게.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 hyo. 우리 집 단풍나무



요즘 말을 아낀다.

지인들에게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괜찮다. 말로 못한 것들은 이렇게 글로 써내면 되니까. 말 많은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라는 한 시인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려 한다. 그러다 외로우면 베란다를 찾으면 될 일이다. 말이 없는 초록이들과 함께 얼음음료 하나 들고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낸다.


마음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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