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벤자민 고무나무
속도 더부룩하고, 걷다 보면 복잡한 감정도 훌훌 털어버릴 것 같았다.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와서 하천을 따라 걸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밤은 늘 활기가 넘친다.
해가 길어진 탓도 있지만,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해가 진 다음에야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즐긴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일까, 조용하던 거리가 야시장이라도 열린 듯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름밤은 늘 그렇게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은, 그런 편안함이 있다.
중학생... 아니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달리기를 하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남자아이들에게서 좋은 향기가 난다. 이 좋은 향기는 마주 오는 아주머니들에게도 전해졌다.
"남자 애들이 뛰는데 땀냄새가 안 나고 좋은 향기가 나네"
좋은 향기는 긴장을 풀어준다. 복잡한 마음의 퍼즐 조각 몇 개쯤은 내게서 빠져나간 듯하다. 걷다 보면 나를 누르고 있던 수많은 복잡함도 모두 다 털어버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부부인지 연인인지 모를 사람들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함께 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인다. 일요일 밤, 출근을 앞둔 무거운 밤인데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홀로 앞을 향해서만 나아간다. 걸음이 빨라진다. 몸무게가 1 킬로그램 정도는 빠진 느낌으로 몸이 가볍다. 가끔은 달려도 보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책길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나아간다.
모두가 좋은 선택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래서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나를 기준으로 모든 일을 판단한다. 어차피 사람이란 다 그렇다. 내가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상황을 적용한다.
지난 5월에 데리고 온 무늬 벤자민 고무나무.
여름이라 그런지 훌쩍 키가 큰 느낌이다. 외목대의 수형이 멋스럽고 잎도 풍성해서 보자마자 한눈에 들어왔던 식물인데, 무늬가 있어 색감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키를 키워가며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수형을 기울여 보인다. 아직은 작은 아이인데도 우아한 모습으로 쳐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무늬벤자민 고무나무의 꽃말은 '변덕쟁이'.
왜 이런 뾰족한 꽃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학창 시절에 꽤나 들어 봤던 그 단어, 변덕쟁이.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친구들에게 변덕을 부렸던 걸까. 난 그렇게 변덕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런 오해를 사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어떤 한 모습만 보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자기 자신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저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비치는 내가 아닌 사람의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그러니 타인이 나의 이미지에 대해 그들의 생각대로 못 박아 버린다고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평화주의자이면서 내 주장은 굽히지 않고 싶어 하는 내가 변덕스러운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건, 피곤하게 살기 싫어서다. 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결국 그의 주장에 맞춰서 넉다운을 인정하고 만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이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정면돌파보다는 회피를 추구하는 회피형 인간인지도 모른다.
무늬벤자민 고무나무는 '나무'라는 이름답게 키가 150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잎의 가장자리에 크림색이 둘러져 녹색 이파리를 감싸는 느낌이다. 인도,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북부가 원산지인 이 식물은 삽목이나 접목으로 번식도 가능하다. 생육온도는 21~25도로 온도가 13도 아래로 내려가면 거실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과습에도 유의해야 하는데, 물을 주고 나서 통풍과 환기가 중요하다. 과습일 땐 이파리를 떨구니 주의해야 한다. 잎에 물을 뿌려주거나 물에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관리를 해줘도 좋다. 무늬식물인 만큼 햇볕도 충분하게 보여줘야 한다. 빛이 부족하면 무늬가 사라질 수 있다.
아직은 줄기가 얇은 편이지만, 언젠가는 튼튼한 목대를 가진 나무가 되기를 바란다. 왜 그런 꽃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늬벤자민도 어쩌면 다른 식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살아야 한다. 모든 생명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니까. 부딪치더라도 조화롭게 융화하며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끔 나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 따져 들어 해결하려 하는 노력보다 덮어두는 지혜도 필요하다.
오늘도 홀로 걸으며 툭 털고, 툭 던져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