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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20. 2024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비행기를 기다리는, 그러니까 여행을 앞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다. 세상 편한 저마다의 방을 두고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불편과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기어이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목적은 다들 다르겠지만 여기가 아니라면, 그곳이라면, 좀 더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번거로운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는 것일 게다. 

우리 삶에 희망을 뺀다면, 아니 희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본다면 여행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출국심사 때마다 생수병을 빼앗겼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병뚜껑도 따지 못한 채 헌납하고 말았다. 비행기를 타는 횟수가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거의 5년 만의 출국 때문이라는 자조를 하면서 혼자 멋쩍게 웃었다

굉음을 내며 달리던 비행기가 순식간에 떠오를 때는 매번 신기하기만 하다. 야간 비행이어서인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지런히 눈을 붙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에서 캔맥주를 주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여 기내는 어수선했다. 

나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깜깜함 밤에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이 자아내는 밤풍경에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고속도로에서 헤드라이트의 불빛에만 의존해서 달리면서도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이 멀리 보일 때의 안정감이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그와 같은 마음들이 비행기 조종사들에게도 해당되는지 궁금했다. 유리창 전면 가득 펼쳐진 밤하늘의 낭만이라는 것이 수없는 비행에서도 매번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비행사라는 직업은 황홀한 순간들의 연속일 것이나, 익숙함과 당연함에 너무 쉽게 적응해 버리는 우리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여행자의 마음과 눈으로 매일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신비로운 일로 가득할 것이다.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 30분을 넘어서 비엔티안 왓따이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오빠, 유심 여기야, 여기!' 하며 어색한 한국말로 손짓을 하는 라오스 여성들이 통신사 부스 안에서 밝은 표정으로 맞이했다. 유심을 갈아 끼우고 나니 곧바로 누군가 옆에 와서 택시를 탈 수 있도록 안내해서, 그야말로 여행하기 전부터 머릿속에 그려왔던 사소한 걱정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이 속전속결로 예약해 둔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아고다를 통해서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은 사진과 너무도 달랐다. 각진 사각형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큰 침대와 문을 활짝 열지도 못하는 구조의 욕실, 무엇보다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순간, 첫날부터 뭔가 꼬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새벽에 도착해서 따지기에도 피곤하고, 지금 와서 따져본들 무슨 이득이 있겠냐는 생각에 대충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피곤한 몸과 달리 두 눈은 말똥말똥해졌다.

그래,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지. 집을 나서는 순간 고생은 시작되고 또 전혀 예기치 않은 일들이 다반사인 게 여행이 아닌가. 그래도 저렴한 숙소비에도 조식도 준다니 기대를 해보자고. 피곤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상황에서도 설렘과 기대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여행이라는 것이 줄 수 있는 혜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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