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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20. 2024

달콤한 인생


방비엥으로 가기 위해 전날 예약해 둔 밴을 타는 곳으로 가니 이미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능숙한 운전기사는 짐들을 차곡차곡 싣고 여러 대의 밴에 사람들을 나누어 탑승하게 했다.

여행지에서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이동하는 시간 또한 아주 중요하고 그것이 여행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자, 설레고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셔서 차에 타자마자 피로가 밀려왔지만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에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엔티안의 외곽 풍경은 낙후된 이곳의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곳곳에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는 가운데 밴은 어느새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진입했다. 너무 한산한 고속도로와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자연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타고 있는 밴이 어떤 세상의 끝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졸기도 하고 불편한 자세를 고치느라 드문드문 눈을 떠서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펼쳐졌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방비엥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굴곡이 심한 산들은 장엄함보다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는 느낌이었고, 오전의 햇살을 잔뜩 머금어 더 신비로워 보였다. 자연의 위대함이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나, 어쩌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여행지에서의 멋진 자연의 모습이라면 그 감흥이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오니 여기는 그야말로 완전한 시골, 깡촌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마을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가게에는 게으른 개가 아무렇게나 퍼질러 잠을 자고 있었고, 남루한 옷을 입은 우리의 오래전 누이 같은 소녀들이 그늘진 가게 입구에 앉아 해맑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시내로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밴은 허허벌판에 갑자기 정차를 하고 사람들에게 내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밴 안의 사람들은 죄다 어리둥절한 상황에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차례대로 내려 자신의 짐들을 챙겼다. 곧이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툭툭이가 와서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에게 툭툭이라는 말 한마디로 타라는 듯한 시늉을 했다.

아! 이게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인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총을 구하기 위해 기다리던 어떤 벌판에서 오달수와 일행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낡은 자동차를 타고 오던 장면이 떠올라 나는 혼자 실없이 웃었다. 나는 툭툭이를 거부하고 혼자 덩그러니 벌판에 남아 구글맵을 켜서 예약한 호텔을 검색해 보았다. 870미터. 그래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 이럴 때의 이상한 무모함은 때로 고생스럽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하다.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울퉁불퉁한 길을, 그것도 땡볕아래에서 걷는다는 것은... 얼. 마. 나... 낭... 만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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