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붙박이별 Mar 26. 2024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순간, 발걸음을 멈추면...

누군가에겐 행운의 순간이 된다.

 

# 봄날의 산책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가 반가워 동네 산책을 나섰다. 공원은 산책 나온 가족, 연인, 친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건물마다 붙어있는 커다란 현수막과 거리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습이었다.

 무표정하게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TV에서나 보던 유명 정치인들이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는 모습은 무척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마치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한편으론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미소 짓는 그 정치인이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웃기는 일이다. 뭐 로보나 나보다 훨씬 나을 텐데 걱정이라니... 이런 걸 보고 '걱정도 팔자' 하는 건가.

 20여 후면 저들은 다시 TV속으로 모습을 감출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기 거둔 모습으로. 들 중 누군가는 원하던 금배지를 가슴에 달 것이고 누군가는 고배를 마시겠지. 민주시민으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오랜 기간 누적된 학습의 결과로 누가 되든 나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잠시 우리 세상으로 넘어온 그들이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모습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왜일까? 나는 2초 정도 멈춰 서서 그 정치인에게 세상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은 것 같아 더 활짝 웃었다. 그에게 이 순간이 조금 위로가 되었바라면서. 

 


 걷다 보니 또 다른 정치인이 밝은 웃음으로 명함을 건넸다. 나도 웃으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몇 걸음 더 걷다 보니 내가 받은 것과 똑같은 명함들이 바닥에서 이리저리 밟히고 있었다. (그 정치인은 이런 상황이 익숙할지도 모르지만) 상대방의 눈앞에서 명함을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불필요한 생각이 들었다. 명함 속 얼굴에는 발자국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둘러 굴러다니는 명함들을 주워 가방에 넣었다. 그가 발자국이 찍힌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았길 바라면서.




#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순간, 발걸음을 멈추면 누군가에겐 행운의 순간이 된다.


 나는 왜 발걸음을 멈춘 것일까. 그것은 쓸데없는 오지랖 발현일수도 있고, 아니면 각팍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지애가 불쑥 솟아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지나쳐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평범한 순간.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그런 순간들.

 무거운 물건을 든 낯선 이의 짐을 나눠드는 순간,  저 멀리 뛰어오는 사람을 보고 엘리베이터의 열림버튼을 누르고 있는 순간, 유모차를 끄시는 등 굽은 할머니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멈춰서 있는 순간, 비 오는 날 스정류장 앞에서는 물이 튀지 않도록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순간.

출처 : Pixabay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순간, 발걸음을 멈추면 누군가에겐 행운의 순간이 된다.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순간,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려보자. 어쩌면 나로 인해 이 세상이 한 스푼쯤 따뜻해 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07화 센 언니가 들려주는 인생지침 3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